['시비 건립' 나태주 시인에 듣는다]
자연·인간의 사랑 고찰… "'너'를 찾는 게 시인의 몫"
10년간 베스트셀러 1위… 전집·산문집 발간 준비

 

시는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숨결을 나눠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나태주 시인. 사진=김영태 기자

 

공주시내에는 나태주 시인의 시와 시화로 담벼락을 장식한 나태주 골목길이 있다. 사진=김영태 기자

 

나태주 시인은 청소년과 젊은 세대의 고통과 좌절에 대해 많은 공감을 표시했다. 사진=김영태 기자

 

공주시내 봉황산 아래 자리 잡은 풀꽃문학관 전경. 사진=김영태 기자

 

지난 25일 서천군 기산면 막동리에서 제막식을 가진 나태주 시인 시비. 사진=충남문인협회

무엇이 시인에게 끊임 없이 시를 쓰게 하는가? 21세기에 시는 무엇인가? 시인을 만나기 전에 이런 저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다.

젊은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국민들이 가장 많이 알고 많이 외우는 시를 쓴, 살아있는 시인… '시인 나태주'는 오늘날에도 시가 살아있음을, 그게 여전히 유용함을 보여주는 상징이고 현상이다.

나태주 시인(80)을 공주 시내 봉황산 자락 풀꽃문학관에서 만났다.

나 시인의 시 이름을 딴 풀꽃문학관의 꽃밭에는 채송화가 한창이었다. 담 쪽에는 한여름 더위가 무색하게 분홍빛 능소화가 활짝 피어 있었다.

나 시인은 먼저 인간과 자연에 대해 이야기했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간다고 걱정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과 인간에 대한 사랑입니다. 아무리 인공지능(AI)이 나오고 기계니 뭐니 해도 시작과 끝은 인간과 자연이 아닙니까? 신림역과 서현역 칼부림 사건을 보세요. 인간에게 숨어 있는 악과 불안, 혐오가 분출하기 시작했어요. 자연이 파괴됐는데 인간이 얼마만큼 버틸 수 있을지? 침몰 직전의 타이타닉이에요."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사랑>

그는 인간 종말시대 힘들어하고 숨을 쉬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숨결을 나눠주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인과 정신과의사, 종교인, 교육자 등이 할 일이 아니냐는 것이다.

시인의 할 몫이 뭐냐고 질문하자 그는 '너'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너'를 발견해야 해요. 너는 원래부터 있었어요. 발명이 아니라 발견입니다. 시는 새로운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닙니다. 개조가 아니라 도와주는 것입니다. 마음 속의 등불을 밝게 해주는 거예요. 절망과 불안, 우울과 초조와 원망 같은 것들을 되돌려서 그 사람이 본디 갖고 있던 밝은 본질로 돌아가게 해야 합니다."

그는 '나'만 챙기고 '너'를 외면하는 세태를 경계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시인의 태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시인은 선한 영향력을 줘야 해요. 그러자면 법정스님의 말처럼 먼저 시인 자신이 맑고 향기로워야 합니다."

시인이 어떤 사람이냐? 어떤 사람이 시인이냐는 질문에 그는 네덜란드 작가 레오 리오니의 동화 <프레드릭>을 예로 들었다.

이 책에서 주인공 생쥐 프레드릭은 다른 쥐들에게 자신이 만든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를 들은 쥐들이 감동하여 박수를 치며 "프레드릭 넌 시인이야."라고 말하자, 프레드릭은 얼굴을 붉히며 수줍게 "나도 알아"라고 대답한다.

"시인은 독자가 시인이냐고 물으면 수줍게 얼굴을 붉혀야 합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내가 시인이다'라고 본인이 나서면 되겠어요?"

시인은 인간이 힘들고 고통스럽고 방황할 때 희망과 힘, 위안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연스럽게 인정받고 존경받는 시인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젊은 세대, 성과·속도·효율사회에 방황, 좌절>

나 시인은 요즘 청소년과 젊은 세대에 대해 많은 걱정과 공감을 얘기했다.

"요즘 우리가 성과사회, 속도사회, 효율사회에 살고 있잖아요. 이런 것을 아이들한테도 강요합니다. 무한경쟁을 하고, 무한속도를 내라고요. 무한자유, 무한소유, 무한정보… 모든 것을 펼쳐놓기만 하고 그 뒤로 아무 것도 가르쳐주지 않아요."

그래서 방황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이런 저런 일도 저지르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나 시인은 어느 시인보다도 젊은 세대의 아픔과 고통, 좌절을 잘 헤아리고, 따뜻하게 보듬고 있다.

자세히 보아야/예쁘다//오래 보야야/사랑스럽다//네가 그렇다

그가 2015년에 발표한 <풀꽃1>이라는 이 시는 수 많은 젊은이들과 독자들이 외우는 애송시가 됐다. 늘 젊은 세대와 소통하며 그들의 언어로 평이하고 쉽게 시를 쓴다. 그는 거대담론이나 이념의 시대가 지나갔다고 진단한다. 개인의 감정과 정서, 취향 등을 인정하고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자연과 인간을 노래하되 소재는 일상에서 흔히 보고 대할 수 있는 것들을 다룬다.

기죽지 말고 살아봐/꽃피워 봐/참 좋아

<풀꽃3>이라는 이 짧은 시는 힘들어하고 좌절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 있다. 그의 시집 『꽃을 보듯 너를 본다』는 최근 10년 동안 베스트셀러 시집 1위에 올랐고, 『가장 예쁜 생각을 너에게 주고 싶다』,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등도 많은 판매 부수를 기록했다.


수많은 글을 쓰고 책을 낸 비결을 묻자 그는 여자(너) 덕분이라고 말했다.


"죽고 죽고 살기로 쓴 건 아니고 축복을 받았어요. 늘 내 앞에 책(시)과 여자가 있었어요. 여자는 나한테 시를 쓰게 했고, 책을 내게 한 사람이 여자예요. 여자는 나한테 '너'에요. 늘 '너'가 있었어요. 내 시의 출발부터가 '너'예요. <대숲 아래서>라는 시의 '어제는 보고 싶다 편지 쓰고, 어젯밤 꿈엔 너를 만나 쓰러져 울었다'는 구절이나 <꽃을 보듯 너를 본다> <가장 예쁜 생각을 너에게 주고 싶다>라는 시에도 '너'가 나와요."

<나무가 되고, 그늘이 되고, 착한 바람 되고 싶어>

그는 자신의 시를 '너에 대한 고백과 하소연'이라고 말했다. 내 입장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 '네' 입장으로 바꿔서 고백, 하소연했다는 것이다. 내가 사랑스럽고 존귀한 것처럼 너도 그렇다는 것이다.

그는 요즘 전집을 준비 중이다. 시 전집은 50권 총 7000쪽, 산문집은 21권으로 7000쪽 정도라고 한다.

지난 25일에는 그의 고향 서천군 막동리에 시비가 세워졌다. 한국문인협회 충남지회(지회장 김명수 시인)와 서천군, 동료 문인들이 <대숲 아래서>라는 시비를 세운 것이다.

그의 선한 영향력은 공주시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공주시는 그의 대표시 <풀꽃>을 기념하는 풀꽃문학관을 운영하고, 나태주골목길도 조성했다. 공주시내 주택가 담벼락에 나 시인의 시와 그림을 그려놓은 나태주골목길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로 자리잡았다.


함께 가자

먼 길

너와 함께라면

멀어도 가깝고

아름답지 않아도

아름다운 길

나도 그 길 위에서

나무가 되고

너를 위해 착한

바람이 되고 싶다


"<먼길>이라는 시에요. 우리 인생은 고달프고 멀어요. 애들한테도 어른한테도... 너에게 나무가 되고, 그늘이 되고, 좋은 소리를 들려주는, 그런 어떤 존재가 되고 싶어요. 이럴 때 시인으로서 기쁨을 느껴요. 이런 시를 썼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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