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2년 개정농지법 시행 농촌사회 불만·혼란
규제 겹겹 농사지을 사람도 없는데 팔지도 못해

LH 땅 투기사건 이후 개정된 농지법이 엉뚱하게 농민만 규제하고 있다는 여론이 높다 . 사진=김재근 선임기자
1994년 제정된 농지법은 산업화시대 경자유전을 근간으로 하고있다. 사진=김재근 선임기자
2021년 8월부터 농지처분을 이행하지 않았을 때 부과하는 이행강제금이 종전 20%에서 25%로 상향됐다. 사진=김재근 선임기자
개정된 농지법 시행으로 주말·체험영농 목적의 농지 취득과 농막 설치가 엄격하게 제한된다. 사진=김재근 선임기자


LH 땅 투기 사건과 관련하여 개정된 농지법 시행되면서 농촌사회에 혼란과 불만,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5월 불법농막 단속, 농막 내 야간 취침 금지, 농막 내부 휴식공간 제한 등을 담은 '농지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농지의 취득 및 소유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영농을 강권하는 전방위 압박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농지를 사기도, 팔기도 어렵다!"

"투기꾼 잡으랬더니 농민들을 말려 죽이는 미친 정책"

"농지법 모르면 세금폭탄!"

"땅 가진 거지, 남아도는 농지 왜?"

요즘 유튜브 등 온라인에 떠도는 영상들이다.

<경남도의회 등 정부와 국회에 건의문>

경남도의회와 대한민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가 최근 정부와 국회에 농지 규제완화 촉구 건의문을 제출했다. 이들의 건의 내용은 유사하다.

건의서는 개정된 농지법이 농민과 농촌지역의 자산 가치를 하락시키고 지방의 소멸 위기를 가속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수도권과 지방, 도시와 농촌의 현실이 엄연히 다른데도 획일적으로 농지법을 강화하여 농민과 농촌을 더욱 어렵게 했다는 것이다. 귀농과 귀촌, 민박, 캠핑 등을 통해 삶을 영위하려는 사람들의 농지 취득을 어렵게 했고 결과적으로 농촌 인구 유입도 차단했다고 주장했다. 농지 거래가 급감하여 농지가격이 하락함으로써 농민과 지방사람의 자산 가치를 떨어뜨렸다고 밝혔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현행 농지법을 LH 땅 투기 사건 이전으로 환원하고 국토 균형발전 차원에서 비수도권의 농지취득 규제를 완화하라고 촉구했다.

2021년 LH의 일부 직원의 땅 투기 사건이 불거지자 정치권과 정부는 4차례에 걸쳐 고단위 농지 취득 및 소유 규제 대책을 시행했다.

2021년 8월 17일부터 시행된 개정 농지법은 농업진흥지역에 대한 주말·체험영농 목적의 농지 취득·소유 제한, 투기목적의 농지 즉시 강제처분 절차 신설, 농지처분 이행강제금 종전 20%에서 25%로 상향, 농지 불법취득 시 3년 이하 징역 3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을 담았다.

2022년 4월 15일부터 시행된 농지법은 농업인(세대)별로 작성하던 농지원부를 필지별로 작성하도록 했고, 1000㎡ 이하 소규모 농지도 농지원부를 작성하도록 의무화했다.

2022년 5월 18일부터는 지자체가 농지 취득자의 영농의지 등을 심사할 수 있도록 농업경영계획서 서식을 개편하고, 주말·체험영농 계획 서식을 신설했으며, 농지취득자격 신청자는 직업 등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하도록 했다.

<투기는 도시사람이 고통은 농민이…>

지난해 8월 18일부터 시행된 농지법은 시·구·읍·면에서 농지취득자격을 심사할 수 있도록 농지위원회를 설치하고, 농지임대차계약 체결·변경·해지 시 60일 이내에 농지대장 변경을 신청하도록 했다.

이러한 농지법 규제 강화에 대해 농촌지역사회와 농민들은 대개 그 내용을 잘 모르고 있고, 내용을 아는 농민들은 정부가 그렇게까지 농민들을 닥달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청양군 정산면에 거주하는 농민 김모씨(76)는 "농사를 안 지으면 매년 25%씩 농지처분 이행강제금을 정말 내야 하는 거냐?"며 "산골의 밭 태반이 방치상태고 농로조차 없어졌는 데 어떡하라는 거냐?"고 비판했다.

정부가 농지은행을 통해 농지를 매입하는 것도 농업진흥지역 등 농사를 짓기 편한 곳에 한정돼 있다며 이런 식으로 법을 적용하면 농사를 짓지 못하는 영농여건불리농지는 머지 않아 헐값에 팔려나가거나 국가 땅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투기를 막는다며 농지취득자격증명을 강화하고, 주말·체험영농을 위한 농지취득과 소유를 제한한 것도 탁상행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투기를 막는 것은 동의하지만 지나치게 규제를 함으로써 도시민과 외지인의 농촌진입을 원천 차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주시 정안면에서 밤 농사를 짓는 이모씨(67)는 "주말·체험 영농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농촌과 농사를 익히고 귀농까지 연결된다면 얼마나 바람직한 것이냐?"며 "농림부가 오히려 농촌 소멸을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농취증 발급이 까다로워지면서 전국적으로 주말·체험 영농 목적의 농취증 발급이 30% 넘게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최근 농림부가 농막에 대한 대대적인 규제를 담은 농지법 시행령 개정안을 예고하면서 농지 매매가 급감하는 추세다. 농민들은 땅 투기는 LH 직원과 정치인들이 했는데 농민만 고통에 몰아넣고 있다고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농사 지을 사람도 없는데 첩첩산중 시골 땅도 판로가 막혔다는 것이다.

<30년된 농지제도 21세기 변화 담아내야>

정부와 정치권이 LH 사태 이후 성급하게 개정한 농지법을 현실에 맞게 다시 손봐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농민들은 무엇보다 획일적으로 제도를 적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투기가 일어나는 수도권이나 대도시, 개발예정 지역은 강력하게 농지 취득과 소유를 제한하되, 인구가 급감하고 농사 짓기 어려운 벽지의 농지 거래는 막지 말라는 것이다.

1994년에 제정된 농지법은 농경시대와 산업화시대 농산물 자급과 경자유전(耕者有田)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30년이 흐른 지금 21세기 시대적 흐름에 걸맞게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농림부가 땅 투기에 신경을 쓰느라 소멸 위기에 처한 농촌의 절박한 상황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젊은 사람들이 농촌사회에서 정착하여 주말·체험 영농과 펜션, 숙박, 건강, 레저산업 등 다양한 경제활동을 벌일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농지 전반에 대한 소유와 영농 형태에 대한 상세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농민들의 경제와 복지, 지속가능한 농업, 농업의 공공성 확보, 기후변화와 탄소배출, 국토개발전략 등을 두루 담은 새로운 농지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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