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정 건양대병원 분만실 책임간호사
김은정 건양대병원 분만실 책임간호사

필자는 분만실 간호사이자 조산사다. 작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장기간 입원하고 있는 고위험 임산부들과 감정을 공유해온 지도 어느덧 23년. 나를 애타게 부르짖는 산모들 사이에서 정신없이 업무 한 후에는 숟가락 들 힘도 없지만, 그들의 감사 인사에 또 웃으며 일하는, 분만실 근무가 천직인 간호사다.

필자가 결혼 후 임신을 준비하는데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불임과 유산을 반복하다가 결국 임신에 성공했으나 26주경 조기진통 및 질 출혈로 입원하게 됐고 2011년 건강한 남자아기를 출산했다. 20시간이 넘는 산고 끝에 정상분만했지만 출혈 과다로 일주일간 입원을 해야 했다. 그래서 일까? 나는 불임환자의 간절함도, 유산 산모의 아기 잃은 슬픔도, 조산을 걱정하는 고위험 산모의 하루하루 불안한 마음도 완벽히 공감할 수 있게 됐다. 너무 힘들어하는 산모가 있을 때 내 경험을 들려주며 위로하기도 한다.

어느 날 임신 23주의 산모가 조기 진통과 조기 양막 파열 진단하에 고위험 임산부 집중치료실로 입원했다. 퇴원 기약이 없이 계속되는 입원생활에 지친 산모는 생존 주수가 아닌 아기를 제왕절개로 출산하고 싶다고 했다. 소중한 생명을 포기하겠다는 말이다. 몇날 며칠을 애원하고 매달리다 급기야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보호자나 의료진의 말도 듣지 않는 상태에 이르렀다.

필자는 울고 있는 산모를 말 없이 안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지금 심정을 이해한다는 마음을 전했다. 제일 걱정되는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산모는 울면서 조산으로 태어날 아기의 장애가 제일 걱정된다고 말했다. 키울 자신도 없고 그 아이가 첫째 아이에게 짐이 될까 너무 걱정된다고, 아직 덜 자란 아기니까 포기하겠다고 고백했다.

필자는 산모의 등을 쓰다듬으며 심장 기형으로 가슴 아프지만 아이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경험과 아기에 대한 미안함, 죄책감으로 괴로울 때가 많다는 심정을 전했다. 산모는 나를 안고 펑펑 울었다. 이후 필자는 근무 때마다 말동무도 해주고 가슴 졸이는 상황을 잘 견디도록 항상 함께해줬다.

양수가 적었던 산모는 불가피하게 32주에 응급 제왕절개 수술로 남자 아기를 출산했다. 다행히 아기는 임신 주수에 비해 건강했다. 하지만 외부환경 적응을 위해 고농도 산소 치료 병행 중 미숙아 망막증을 앓게 됐다. 산모는 신생아실에서 입원치료를 받는 아기 면회를 올 때면 필자를 만나러 분만실에 오곤 했다. 다행히 미숙아 망막증이 심하지 않아 치료받으면 시력에는 이상이 없단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나는 정말 뼛속까지 분만실 간호사다. 간호사로서 일을 더 이상 못할 때까지 내가 사랑하는 이 일을 계속할 것이다. 그냥 마흔 중반의 아줌마 간호사가 아니라, 계속 공부하고 발전시킬 줄 아는, 산모의 마음을 더 헤아릴 줄 아는 멋진 간호사로 늙어가는 것이 필자의 바람이다.

김은정 건양대병원 분만실 책임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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