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대전을지대병원 간호사
김병준 대전을지대병원 간호사

며칠 전 반가운 이에게 연락이 왔다. 8년 전 나의 첫 프리셉티(회사에서는 부사수)가 스승의 날을 맞아 감사 인사와 함께 선물을 보낸 것이다. 사직한 지 몇 년이 흘렀음에도 아직까지 날 기억해주고 선물까지 보내주다니.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지며 눈물이 글썽거려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간호사의 선후배 관계라고 하면 '태움'을 떠올린다. 간호사의 태움은 선배 간호사가 신규간호사를 '까맣게 재가 될 때까지 혼을 낸다'는 좋지 않은 의미다. 사소한 실수를 과하게 질책하거나 다른 이들 앞에서 폭언과 욕설을 하며 모욕을 주는 등의 모든 행위가 태움에 해당된다. 사실 촌각을 다투며 환자를 돌봐야 하는 간호 현장에서 한 번의 실수는 환자의 생명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신규간호사에 대한 교육과 업무에 대한 적응은 더욱 엄격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처럼 신규간호사들이 업무에 적응하고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태움은 통과 의례처럼 '버텨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태움 같은 악습이 간호계에서 없어지지 않는 이유는 개인의 인격 문제일 수 있지만, 태움을 합리화하는 악순환과 열악한 근무조건, 인력난 등 사회구조적인 문제에 있기도 하다. 대다수의 병원에서는 신규간호사와 경력간호사가 1대 1로 짝을 지어 일정 기간 동안 신규간호사의 적응과 학습을 돕는 프리셉터십 교육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인력 부족으로 경력 간호사들은 신규간호사의 교육뿐만 아니라 환자 간호 업무까지 병행해야 하고, 이에 따른 부담감과 업무시간 부족은 스트레스로 작용해 다양한 정신·신체적 문제들을 야기시킨다. 또한 신규간호사들은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업무를 익히는 것이 불가능 하기 때문에 이 역시도 그들에게 큰 압박이 된다.

이처럼 간호사의 업무 범위나 인력 수급, 교육, 근무 환경 등 문제 해결이 시급한 가운데 그 근간이 되는 것이 바로 간호법이다. 세계 90여 개국에서 간호법을 제정하고 시행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간호사들의 역할과 범위는 1951년에 제정된 의료법 안에서 규정되고 있다.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고 적절한 노동 시간을 명시하며 간호사 인력을 확보해 적절하게 배치하자는 것이 간호법의 주요 내용이지만 여러 단체에서는 우려를 표하며 제정을 반대하고 있다.

사실 간호대학을 갓 졸업한 새내기 간호사들에게 선배 간호사들은 그들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선배들의 응원과 관심은 한 간호사의 인생을 바꿔 놓을 수도 있다. 간호인력 배치가 어렵다는 이유로 경력 간호사에게 무조건적인 배려를, 신규간호사에겐 인내를 바라는 것은 태움과 같은 악습만 되풀이하게 할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악습을 없애고 환자들에게 양질의 간호, 전인 간호를 제공하기 위해 간호법 제정은 선택이 아닌 필수인 것이다.

김병준 대전을지대병원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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