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한국전쟁 전황보도 속보판으로 창간 1960년대 개발시대 발맞춰 본격 의제 설정 백제문화재 복원·독립기념관 건립 등 제기 현안해결·이슈발굴 앞장 지역발전 큰 역할

시민과 지역이 필요로 하는 것을 의제로 발굴하고 여론을 조성하는 것은 언론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어느 덧 창립 64주년을 맞은 대전일보의 발자취를 돌아보면 누구보다 먼저 지역 이슈를 발굴하고 그것이 지역발전의 단초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1950년 지역민들에게 전황을 전하기 위해 창간한 대전일보는 1960년대 들어 개발시대로 진입하며 본격적인 의제 설정에 나선다.

1965년 4월 6일자 `백제문화재 복원운동` 사고(社告)가 대표적이다. 대전일보는 백제문화재복원사업추진위원회와 공동으로 백제문화재 21점을 선정해 700여 만원의 돈을 들여 복원 사업을 전개했다. 4월 11일자에는 사업의 성격과 취지를 자세하게 보도하며 각계각층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도민 개인은 물론 공무원, 경찰, 교사, 학자, 경제계에서 성금기탁이 잇따랐다.

1966년에는 지역민들의 오랜 염원이었던 충남대 의과대학 설립운동에 앞장섰다. 앞서 1951년에도 충남대 설립을 선도했던 대전일보는 1966년 8월 30일자에 대전일보 사장실에서 열린 추진위원회 출범 소식을 전했다. 당시 남정섭 대전일보 사장을 필두로 언론계, 법조계, 의료계, 정계, 학계 등 14명이 충남에 의학도 양성이 시급하다는 내용으로 결의하고 박정희 대통령에 건의문도 보냈다. 지역민의 노력이 더해져 이듬해인 1967년 11월 충남대 의대 설립이 결실을 맺었다.

1980년대 민주화의 진통 속에서도 의제를 제시하고자 하는 대전일보의 노력은 두드러진다.

정부는 1982년 8월 28일 가칭 `독립기년관 건립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발기대회를 가진다. 대전일보는 준비위 출범과 독립기념관 건립계획을 상세하게 보도하고 8월 31일자 1면에 `독립기념관 건립 성금 모금` 사고를 실었다. "독립기념관 건립이야말로 우리 자존을 지키려는 우리 결의의 하나"라며 "기념관에 쌓을 벽돌 하나하나에 각자의 이름이 새겨질 것이라 생각하고 모두 독립기념관 건립 성금 모금에 뜨겁게 호응해달라" 호소한 결과 총 4억 6041만 777원의 성금을 모을 수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독립기념과 유치 움직임이 일 때 대전일보는 독립기념관이 충남에 와야 한다는 여론 조성으로 반향을 일으켰다. 1983년 독립기념관이 본격적인 건립공사에 들어가자 전시사료 수집운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대전일보는 1982년 당시 60년만에 찾아온 진객 황새 1마리가 오염된 갑천으로 인해 비명횡사한 것을 계기로 갑천을 살리자는 특집 기획물을 내보내기도 했다.

1984년에는 대전역을 관통하는 동서로의 개설을 적극 주장했다. 대전역 동부지역이 행정 상업 문화의 중심지인 중구와의 교통단절로 낙후돼 역을 관통하는 도로가 절실하다는 내용이었다. 지역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동서관통도로는 2002년 11월 27일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1985년 7월부터는 대전직할시 승격 운동에 앞장섰다. 1985년 7월 9일자에 1면 보도를 통해 광주와 시세가 비슷한 대전도 직할시로 승격돼야 한다는 점을 부각시켜 지역민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고 이는 범 시민운동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1989년 대전 동물원 조성 제안은 "대전에서 캥거루를 보고 싶다"는 한 초등학생의 전화에서 비롯됐다. 대전일보는 곧바로 3월 22일자에 이 내용을 보도했으며 일선 학교 교사와 학생, 학부모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이후에도 여론조사, 전국 동물원 방문 취재 등 끈질긴 보도와 추진 독려로 대전 보문산 동물원은 2002년 5월 5일 어린이날 문을 열었다.

대전일보는 1989년 5월 16일자에 대전시가 서대전 4가의 나대지 개발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했다. 해당 토지는 10여 년 가까이 개발되지 않고 방치돼 있었다. 1990년 3월부터는 공원 조성 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섰으며 1992년 11월 공사비 10억원을 투입해 서대전 시민광장이 조성됐다.

1996년에는 월드컵유치의 열기를 살려 지역 프로 축구팀 창단이 필요하다는 여론을 조성했다. 이런 노력은 1997년 대전시티즌 창단으로 결실을 맺었다. 2002년 지역 기업들의 어려움으로 대전시티즌이 존폐기로에 섰을 때도 대전시와 지역업체, 시민들이 모두 나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대전시티즌이 시민구단으로 전환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다.

대전일보의 노력은 2000년대 들어서도 지속된다. 2002년 나노팹 센터를 대전에 유치하기 위해 앞장섰고 2003년부터 대전 3대 하천 살리기 캠페인을 벌였다. 2004년에는 고암 이응노(1904-1989) 화백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삶과 예술을 집중 조명하는 시리즈를 내보내며 이응노 미술관이 탄생하는 밑거름을 제공했다. 김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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