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무더위는 덜했고 늦장마가 온 듯했다. 자주 가는 카페에서 진한 커피를 마시며 비 내리는 풍경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곳에는 홀과 주방을 구분하는, 긴 바 테이블을 둔 나만의 좌석이 있다. 내가 테이블에서 게임도 하고 유튜브도 봐서 그런지 우리 학과 학생들은 그곳을 나의 놀이터로 보는 듯하다. 사실 겹치는 일로 잠깐 일탈을 꿈꾸며 멍해 있거나 글감 또는 논문의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공간이기도 하다. 카페의 사장님과 바를 두고 하루하루 사는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가끔 사장님의 개 "밍구"가 바를 넘어 쓰다듬어 달라고 아양을 떤다. 내
세종시교육청은 올해부터 '중학교 나다움성장교육과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1년 과정으로 운영해 오던 중학교 1학년 '자유학년제'를 한 학기 '자유학기제'로 전환하는 대신, 3학년 2학기를 '진로집중학기'로 운영함으로써 2025년 도입 예정인 '고교학점제'에 대비하겠다는 취지다.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 고등학교 2학년부터 선택 교육과정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를 위해 학생들은 적어도 1학년 2학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자신의 진로 및 진학 계획에 맞는 선택과목을 결정해야 한다. 어떤 진로나 직업을 선택할지, 어떤 대학의 학과에 진학하고,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작년과 올해 가장 많이 회자된 말 중에 하나가 '뉴 노멀'일 것이다.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이 도래했으니,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필자가 몸담고 있는 교육학 분야에서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그렇지만 자세히 따져보면 오늘날의 팬데믹은 우리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겪어보지 못한 것이지, 인류 역사상 한 번도 발생하지 않은 새로운 일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조금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오늘날과 비슷한 상황들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고 어떻게 대처하고 견뎠는지를 발견할
지난 일 년, UN 보고에 따르면,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 89% 학생의 학업이 일시적으로 중단됐다. 아동 3억 7000만 명이 지난 1년 내내 아예 등교를 못했거나, 거의 등교하지 못했다는 통계도 발표됐다. 유네스코(UNESCO)는 2300만 학생이 앞으로 영구적 학업중단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코로나19의 장기화는 우리 앞에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들과 우려로 그 흔적을 고스란히 남기고 있다. 학생들의 기초학력 저하, 심리정서적 문제, 교육 양극화 심화, 학력격차와 불평등이 교육계를 넘어 해결해야 할 사
혁신학교 정책이 확대되면서 학교의 교육력 강화를 위한 방안의 하나로 교사들의 '전문적 학습공동체' 운영이 주목을 받아 왔다. 학교 현장에서 '전학공'으로 불리고 있는 이 활동은 교원들이 동료성을 바탕으로 함께 수업을 개발하고, 함께 실천하며, 교육활동에 대해 대화하고 협의하는 과정에서 더불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추진됐다. 특히, 종전의 취미 또는 특기 중심의 교사 동아리 활동과 달리 학생 중심의 교육활동에 초점을 맞춰 교사 간 협업을 강조하고, 자율적·자발적 학습공동체 활동을 통해 개별 교사뿐만 아니라 교사 집단 전체
많은 사람들은 조선시대 과거시험을 다음과 같이 떠올릴 것이다. 앞에는 시관이 앉아 있고, 그 옆에는 수험생들이 풀어야 할 시제가 놓여 있다. 오와 열을 맞춰 앉아 있는 수험생들이 문제를 풀고 있으면, 감독관들이 그 사이를 오가며 부정행위를 단속한다. 이것이 우리가 드라마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과거시험 풍경이다.그렇지만 조선시대 문과(文科) 과거시험에는 이렇게 필기시험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강경(講經)이라고 해서 구술로 경전에 대한 이해도를 확인하는 시험도 있었다. 3년에 1번씩 실시하는 정기시험인 식년시(式年試)에서는 사서삼경
충남의 알프스 칠갑산 자락을 안고 있는 청양은 여느 농촌보다도 갓난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기 어려운 곳이다. 우리나라 농산어촌의 상황이 대부분 그렇듯 급속한 고령화로 지역은 점점 늙고 쇠약해지고 있다. 그런데 한적하다 못해 적막할 것 같은 시골 동네에 일주일 내내 아이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이 있다. 바로 화성마을학교다.이곳은 지난해 처음으로 마을학교로 선정돼 화성면 아이들과 지역민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는 합천초등학교의 방과후수업 일체를 마을학교로 이관해 바이올린, 첼로 등의 악기 연주와 난타, 학교의 요
삶은 아이러니투성이다. 이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고등학교 절친이 떠오른다. 영어 성적이 좋아 부럽기도 했던 친구다. 나는 유치원 때부터 천자문을 쓰도록 아버지에게 강요받았는데, 학창 시절에는 한문 과목 학습에 꽤 도움이 됐다. 친구는 "너처럼 한문을 쉽게 외우고 싶어"라고도 했다. 웃기게도 친구는 한자어가 난무하는 법학과에 진학했고, 나는 그렇게 공부하기 싫었던 영어로 가득한 영문과에 진학했다.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어문계열 중에 취업률이 높다고 윗분들이 말씀해주셨다. 대학 때도 수업 관련 작품 말고는 한국 소설과 일본 소설을 더
필자의 유년시절인 1980년대에는 아파트라고 해도 지금과 비교하면 이웃 간의 소통이 원활했었다. 그래서 필자가 집 밖에서 사고 비슷한 것을 치고 집에 들어가면 필자의 어머니는 귀신같이 이미 알고 계셨다. 아마도 필자를 알고 있는 이웃의 어르신들이 필자가 한 짓을 어머니께 바로 전달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주변의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마을에서 놀 때는 항상 몸가짐이나 말투를 바르게 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물론 생각만큼 잘 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돌이켜 보건대 내가 살던 동네의 어르신들도 나를 성장시키는 데에 도움을 주셨다. 이
프랙탈(fractal)은 부분과 전체가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는 자기 유사성 개념을 기하학적으로 푼 구조를 말한다. 단순한 구조가 반복되면서 복잡하고 묘한 전체 구조를 만드는 것으로, '자기 유사성'과 '순환성'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주연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박사는 혁신학교의 교육과정을 연구할 때 몇몇 혁신학교를 방문해 교사, 학생, 학부모, 관리자들과 면담한 뒤 '서로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 프랙탈 구조가 문화로 정착된 학교'를 혁신학교의 공통점으로 꼽았다. 혁신학교는 교사와 학생, 관리자, 학부모들이 서로 존중
그녀는 몇 년 만에 아들을 만나려고 혼자 기차를 탔다. 본래 지척에 사는 딸과 함께 아들을 만날 계획이었지만 코로나 백신을 맞는 바람에 평일에 혼자 가게 됐다. 아들은 지방에 근무하는 노총각이다. 몇 년 전에는 꼬박꼬박 주말에 서울로 올라와 아들에게 밥, 국, 반찬을 싸주는 재미가 있었다. 요즘은 아들이 바쁜지 밖에서 대부분 사 먹는 모양이다. 그녀는 집에서 가장 큰 배낭을 꺼내서 아들이 좋아하는 밑반찬, 재어둔 고기, 소분해서 얼려놓은 국을 차곡차곡 넣었다. 몇 개 넣지도 않은 것 같은데 배낭은 꽉 차서 매고 가려니 꽤 무거웠다.
저출산이 날로 심화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촉발된 전례 없는 상황은 가뜩이나 줄어들고 있는 출산율을 더 떨어뜨려 합계출산율이 2019, 2020년 모두 1을 넘기지 못했다. 학령인구 감소로, 학급이 감소하고 학교가 통·폐합 되는 일이 비단 시골 학교만의 일은 아니다. 통계청의 2015, 2020년 인구 동향 조사에 따르면 대전 지역에서 초·중·고에 입학할 것으로 예상되는 학생 수는 큰 폭으로 감소해 2025년이 되면 5년 전보다 8000명 이상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학령인구 감소로 학위 취득, 계층 이동 사다리 등 고전적 대학 기
'스승의 말씀과 행하는 일에 의심스러운 점이 있을 것 같으면 모름지기 조용히 조리 있게 여쭤 그 잘잘못을 가려야 하는데, 곧바로 자기의 의견으로 문득 스승이 잘못이라고 논란해서는 아니 되며, 또한 의(義), 리(理)를 생각하지 않고 스승의 말만 맹신해서는 아니 된다.'이 말은 율곡 이이가 왕명을 받아 성균관의 규칙인 학령(學令)을 보완하기 위해 작성한 학교모범(學校模範)의 한 구절이다. 이 문건은 조선중기 당시의 바람직한 교육에 대한 시대정신을 담고 있으며, 어떤 향교에서는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학교모범을 먼저 한 번 읽은 후에 본
수년 만에 야트막한 산에 올랐다. 장태산 수목원에서 산책할 요량이었다가 마침 휴일이라 온 김에 전망대까지 발걸음을 내디뎠다. 전망대까지 몇백 미터를 앞두고 흔히 말하는 깔딱고개가 너무도 오랜만이라 반가웠다. 정상 누각에서 아기자기한 산맥과 금강 그리고 구불구불한 도로 경치가 정겨웠다. 하산 때는 종아리와 허벅지에 얕은 떨림이 전해졌다. 산악 경치의 출사를 의욕적으로 즐기던 30대 때는 산에 내려가며 다음 산행 계획을 떠올렸던 것 같다. 더 크고 험준한 산으로 더 좋은 등산복과 장비를 갖추는 데 골몰했다. 치기 어린 시절 미지의 곳에
코로나19라는 '생경어'가 '친숙어'가 된 요즘 대부분의 고등학교가 1, 2학년 혹은 모든 학년을 대상으로 격주 등교를 하고 있고 원격 조회와 온라인 수업은 빠르게 일상이 됐다.교사는 새로운 교수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여러 연수에 참여하고 학생에게 가장 효과적인 방식을 찾기 위해 노력하듯이, 학생은 학교가 아닌 집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자신의 학력신장, 수업을 통한 자기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새로운 시스템인 만큼 실수도 많고 적응하는 데 애를 먹기도 한다.원격 수업을 하다 보면 화상 카메라을 꺼놓거나 켜놓더라도 수업 참
최근 모 언론의 기사를 통해 단돈 3만 6000원에 결혼을 강요당한 소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같은 지역의 또 다른 소녀도 원치 않는 결혼을 하고 남편에게 강간까지 당했다. 말라위와 모잠비크 등에 사는 아프리카 10대 소녀들은 조혼을 피할 수 없는 현실에 처해 있다. 학교에서 계속 공부하고 싶었던 은토냐 산데(14세)는 자신을 보내지 말라고 눈물로 호소했지만, 부모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어린 딸의 애절한 마음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을까?그건 뜻밖에도 기후변화때문이었다. 역학 조사하듯 아프리카 소녀들의
수년 전 재독 철학가 한병철의 '피로 사회'라는 책이 회자 됐다. 푸코의 말처럼 과거 사회가 규율 사회고 사람들이 복종적 주체라고 한다면, 현대 사회는 성과 사회, 사람들은 성과 주체다. 금지, 강제, 규율 등 '부정성'으로 점철된 패러다임의 사회가 전자라면 냉전의 종식, 다문화주의, 질병의 효과적 퇴치 등 '긍정성'의 추구가 후자다. 저자는 현대 사회에서 긍정성의 과잉으로 사람들이 스스로 궁지로 몰아감을 지적한다. 즉 성과 주체는 자기 자신을 소모해 사회에는 자신을 낙오자로 느끼는 우울증 환자가 넘쳐나고 성과를 위해 뒤틀린 수단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는 3월이다. 여전히 코로나19는 우리 곁에 함께 하고 있지만, 곧 우리에게 당연했던 일상이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학생들과 열심히 차곡차곡 추억을 남기고 있다. 내가 담임을 맡고 있는 봉명초등학교 우리 반의 교실 뒤에는 '사랑이 가득한 우리 반'이라는 글귀로 장식돼 있다. 초등학교 교사인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인성이기 때문에 '사랑이 가득한 우리 반'을 급훈으로 정해 학생들이 실천하도록 하고 있다. 학생들이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함께 다양한 활동을 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친구를 사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오고 전국에 벚꽃이 만개했다. 사람들이 상춘을 느낄 때 고등학생들은 3월 전국연합학력평가시험을 보면서 좌절을 맛보고 희망을 꿈꾼다. 올해부터는 2015 개정교육과정의 취지에 따라 수능시험의 변화를 반영해 문제가 출제 됐다. 2022년 대입전형의 변화와 이에 대한 입시를 전망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먼저 서울대(30%), 연·고대(40%), 한양대(40.1%) 등 16개 서울 소재 대학이 모집정원 대비 정시모집 비중을 40%까지 확대한다. 이번 수능에는 2015 개정교육과정이 적용되기도 하는데 국어,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을 시작으로 교육계의 역동적인 변화가 시작됐다. 4차 산업혁명과 미래교육은 2015개정교육과정의 역량중심 교육과정으로 본격 시행됐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은 학교현장에 그 이상의 변화를 요구했다. 원격수업이 본격 도입됐고, 지난달 19일 교육부에서 발표한 '고교학점제 종합 추진 계획'은 학교현장뿐 아니라 학부모와 학생에게 우려와 함께 기대감 또한 갖게 한다.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맞게 과목을 선택하고, 이수 기준에 도달한 과목에 대해 학점을 취득·누적해 졸업하는 제도다. 2016년 시행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