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포럼] 과학기술인이 존중받는 사회를

2025-11-25     
곽상수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명예교수

과학기술 패권 경쟁 시대 국가발전을 위해 과학기술인이 존중받고 명예와 긍지를 가지는 사회문화가 조성될 필요가 있다. 한국동란 이후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발전하는 데는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의 역할이 컸다. 미국은 1965년 베트남 참전을 결정한 박정희 대통령을 워싱턴에 초청하였다. 미국이 한국에 공과대학을 지어주려고 하였을 때, 박 대통령은 국가연구소 설립 지원을 요청하였다.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그렇게 탄생됐다. 현재 출연연은 KIST를 포함하여 32개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베트남은 미국과 긴 전쟁 후 국가발전의 모델로 한국 KIST를 주목하면서, 우리 정부에 베트남 KIST 건설을 요청했다. 한국은 ODA 예산으로 건설비용의 50%를 부담하면서 약 10년 노력으로 2023년 하노이 부근에 V-KIST를 성공적으로 출범시켰다. 많은 개도국은 우리의 출연연을 부러워하고 있다. 그러나 주목받던 출연연은 지난 30년 심각한 문제로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훼손된 출연연 연구생태계를 회복하고 과학기술인이 존중받는 사회를 다시 조성하기 위하여 출연연의 불편한 흑역사를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1990년부터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연구업무에 종사하고 올 2월에 정년 퇴임하였다. 처음에는 인건비 100%를 포함하여 연구비가 보장되었다. 그러던 가운데 1996년 연구과제중심제도(PBS)가 실시되면서 인건비의 절반 정도를 외부 수탁과제에서 확보해야 했다. 그렇지 못하면 연봉이 줄고 하고 싶은 연구를 수행할 수가 없었다. 외부과제 수주를 위해서는 장기 연구보다는 단기과제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출연연 연구자들은 연구현장 피폐화 원인인 PBS 개선을 끊임없이 요구하였다. 다행히 이번 정부는 출연연이 임무 중심형 국가대표 연구기관으로 재도약하기 위해 PBS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약속하였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출연연 연구자의 정년이 65세에서 61세로 하향 조정되었으나 아직도 정년 환원이 되지 않고 있다. 박근혜 정부 때는 59세부터 임금피크제가 적용되어 연봉이 줄었다. 궁여지책으로 출연연은 우수연구원을 선정하여 65세까지 정년연장을 하고 있지만, 선정되지 못하면 61세에 연구소를 떠나야 한다. 우수연구원 선정은 주로 연구업적으로 평가되기 때문에 인프라 업무 등 기관 고유업무에 열심히 종사한 연구자는 선정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국제협력을 강조하면서 출연연 퇴직자는 보안상의 이유로 몸담았던 연구기관의 이메일조차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출연연의 연구환경은 어쩌다 이렇게까지 망가졌는가? 필자는 스스로 특혜받은 과학자로서 자존심을 가지고 연구개발, 인재 양성, 국제협력, 과학 대중화 등 열심히 근무하였다. 대학교수는 IMF 때 정년이 줄지 않았고 임금피크제도 적용되지 않았다. 대학의 이메일도 대부분 평생 사용하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 시대에 국가발전을 위해서는 첨단 과학기술이 관건이다. 중국의 과학기술 굴기는 일관된 인재 양성과 과학기술 정책에 있다. 중국 학생들은 의대보다 공대를 선호한다. 일본은 꾸준한 과학정책에 힘입어 과학 노벨상을 27개를 탔다. 우리는 과학생태계를 파괴해 놓고 과학 노벨상을 기대하고 있는 꼴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먼저 우리의 문제를 정확히 진단 분석하여 정권에 영향을 받지 않는 과학기술 중장기 발전계획을 세우고 과학 인재 양성과 과학기술 정책을 펴야 한다, 정권마다 새로운 정책을 펼 것이 아니라 문제를 보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더는 과학을 정치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되고 과학의 문제는 과학자 집단지성에 맡겨야 한다. 물론 과학기술인도 자성하고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유권자 모두가 과학으로 무장하고 과학기술인이 존경받는 사회를 만들도록 노력하면서 정부 과학정책도 감시할 필요가 있다. 곽상수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