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러-우 종전?

2025-11-24     김재근 선임기자
김재근 선임기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가 비밀리에 종전평화안을 만들어 협상에 나선 것이다. 지난 주 미국의 육군장관이 우크라이나를 방문, 협상안을 전달했다고 한다.

협상안은 놀랍다. ▲'우'의 동부 돈바스지역 전체 러시아에 양도 ▲'우'의 정규군 절반 축소 및 러시아 본토 타격용 무기 포기 ▲'우' 영토 내 외국군 주둔 금지 및 나토(NATO) 가입 중단 ▲러시아어의 공식언어 인정과 러시아 정교회 공식 지위 부여 등이다. 러시아가 요구해온 주장을 고스란히 담은, 우크라이나의 항복문서에 가깝다. 트럼프는 "러시아가 더 이상 우크라이나를 공격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포함됐다."며 생색을 내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EU가 펄쩍 뛰지만 종전 쪽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당사자인 러-우 양국 모두 내심 종전을 바라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온 EU와 미국의 피로감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협상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든 우크라이나에게 유리할 게 거의 없다. 적지 않은 영토를 빼앗긴 데다 전쟁을 계속할 군사적 경제적 환경이 안되기 때문이다. 미국과 EU가 무기한 무제한으로 도와줄 리도 만무하다.

2022년 2월 전쟁 발발 이래 우크라이나는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군인 사상자가 20만 명을 넘고, 수천 명의 민간인이 숨졌다. 경제와 생활 인프라가 무너지고, 1000만 명이 삶의 터전을 잃고 국내외로 흩어졌다. 이런 데다 국영 에너지기업의 횡령과 리베이트, 무기구입 조달 비리 등이 불거졌다. 군인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국민적 분노와 불신이 치솟고 있다. 서방국들도 부패부터 척결하라며 비난하는 상황이다.

지난 8월 18일 백악관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젤레스키에 대한 시선도 달라졌다. 처음엔 러시아의 침략에 맞선 영웅으로 여겼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무모하게 전쟁을 부른 사람으로 굳어지고 있다.

전쟁의 결과는 늘 냉혹하다. 패하면 승자에게 돈과 자원과 영토, 심하면 인구(사람)까지 내줘야 한다. 나라의 정체성과 문화가 무너지고, 후손들의 미래까지 저당잡히게 된다. 되도록 전쟁을 안 해야 하고, 하게 되면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것이다. 이 땅에 전쟁을 일회성 행사처럼 가볍게 여기는 지도자들이 많아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