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바이오 산업 표준… 지역 완결형 생태계 구축

산·학·연·병 유기적 네트워크 기술 축적·창업 선순환 구조 강점 해외 수출 계약·코스닥 상장 성과 혁신신약 바이오 특화단지 추진 유성구 일대 2032년까지 3조 투입 연구 개발·제조·임상 전단계 연계 대전 바이오 클러스터

2025-11-20     윤신영 기자
대전 혁신 바이오 생태계. 대전시 제공

대전이 국내 바이오산업의 핵심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대덕연구개발특구(대덕특구)를 중심으로 형성된 연구개발 생태계는 오랫동안 신약 개발의 기반 역할을 해왔다. 최근에는 산업화·기술수출·글로벌 협력까지 확장되며, 국내 최고 수준의 바이오 클러스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대전 바이오산업

대전 바이오산업의 가장 큰 특징은 산업·학계·연구소·병원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오픈이노베이션 구조다. 대덕특구에는 한국과학기술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한국기계연구원,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등 45개 정부출연연구기관과 300개에 달하는 연구소기업, 13개 대학교가 집적돼 있다. 이러한 환경은 1990년대 말 박사급 연구자 중심의 창업생태계를 구축하는 기반이 됐다. 국내 1호 바이오벤처인 바이오니아(1992)를 비롯해 리가켐바이오(2006), 알테오젠(2008) 등은 대전에서 시작한 바이오기업들의 대표적 사례다.

기술 축적과 창업, 기술사업화의 선순환도 만들어냈다. 대전의 바이오기업들은 신약 관련 기술수출에서만 2019-2025년 동안 24조 4641억 원 규모의 성과를 기록했다. 알테오젠의 ALT-B4, 레고켐바이오의 ADC 기술, 펩트론의 약효 지속형 플랫폼, 오름테라퓨틱의 단백질 분해기술, 엔솔바이오사이언스의 퇴행성 디스크 치료제 등을 포함한 대규모 계약이 연이어 성사되기도 했다. 대상은 미국, 일본, 유럽 등 다양하다.

대전에는 300개 이상의 딥테크 기반 바이오벤처기업이 분포하고 있다. 이는 항암제(표적·면역), 퇴행성·난치성 질환 치료제, 마이크로바이옴, 세포·유전자·핵산 치료제, 백신, AI 신약개발 플랫폼 등 전 영역을 포괄한다. 대표 상장기업은 총 28개이며, 이중 리가켐바이오, 알테오젠, 펩트론, 와이바이오로직스, 큐로셀 등 다수 기업이 코스닥 시가총액 상위권에 자리한다. 이를 통해 2010-2021년까지 대전지역에선 3367건의 바이오 특허가 등록돼 서울(9924건), 경기(4915건)에 이어 원천기술·지적재산권 전국 3위를 차지했다.

글로벌 협력도 활발하다. 대전 연구자와 기업들은 미국 메사추세츠 종합병원,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줄기세포연구소, 미국 코넬대학교,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 미국 하버드 의대 맥린 병원 등과 공동연구, 연구자 파견을 이어가고 있다. 일부 바이오기업은 미국 현지 법인을 설립해 기술 확장에 나서는 상황이다.

민간 중심 네트워크 역시 대전의 강점이다. 2012년 출범한 혁신신약살롱은 월 1회 이상 모임을 갖는 연구자 네트워크로, 전국 2000명 이상이 참여한다. 바이오헬스케어협회(BHA)는 매주 금요일 온·오프라인 교류회를 개최하며, 선배기업이 후배기업 양성을 목표로 조성한 'BHA 펀드'도 성과를 창출 중이다. 지역 7개 종합병원과 7개 정부출연연구기관 원장으로 구성된 국내 유일의 연구협력단체인 메디칼 연구개발(R&D) 포럼은 실무위원회 월 1회 이상, 학술대회와 총회는 봄, 가을에 정기적으로 운영한다.

기업 인프라 확충도 진행 중이다. 대전시는 대전바이오창업원(451억 원), 바이오헬스케어 펀드(500억 원), mRNA/DNA 기반 의약품 개발·생산 지원센터(161억 원), KAIST 혁신 디지털 의과학원(421억 원) 등을 구축하고 있다. 충남대병원은 연구중심병원 R&D 사업을 수행하며 지역 병원과 기업 간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대전 바이오 혁신신약 특화단지 개요. 대전시 제공

◇대전 혁신신약 바이오 특화단지

정부와 대전시는 지역 환경을 기반으로 지난 2023년부터 '대전 혁신신약 바이오 특화단지'를 추진하고 있다. 이 단지는 신동·둔곡, 대덕테크노밸리, 탑립·전민, 원촌 일대 891만㎡ 규모 부지에 2032년까지 총 3조 2867억 원을 투입해 '세계 최고 수준의 신약 개발·제조·임상 연계 특화단지'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이 단지는 지난해 6월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로 지정됐다. 목표는 △혁신신약 2개 △글로벌 3상 진입 10건 △라이선싱아웃 20조 원 △고용 증대 5만 명 등이다. 추진 전략에는 AI·디지털트윈 기반 플랫폼 적용, 바이오파운드리 조기 구축, 항체 신속제조 지원, 소부장 국산화, 전문 인력 양성(연 477명), 세계적인 과학자 50명 유치 등이 포함된다.
 

글로벌 제약기업 머크는 대전 둔곡지구 단지형 외국인투자지역에 아시아·태평양 바이오프로세싱 생산시설을 이전하고 있다. 대전시 제공

◇대한민국 바이오산업 표준 목표

대전 바이오기업들은 코로나19 시기 'K-방역'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바이오니아, 수젠텍, 솔젠트, 시선바이오머티리얼즈, 진시스템 등 5개 기업은 규제 특례로 코로나19 진단 제품을 신속히 개발해 2020-2021년, 2년간 7199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글로벌 제약기업 머크사는 대전 둔곡지구에 위치한 단지형 외국인투자지역에 4만 3000㎡ 규모 아시아·태평양 바이오프로세싱 생산시설을 이전하기로 하고 세포배양배지, 여과장치, 가공액 등 핵심 제품 생산 기반을 구축 중이다. 이는 지역 산업 구조 고도화와 글로벌 공급망 편입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대전은 이 같은 성과를 기반으로 향후 바이오산업을 지역 핵심 전략산업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연구자, 기업, 투자기관, 병원, 공공기관이 한 도시에서 긴밀히 연결되는 구조는 국내 어느 지역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대전만의 경쟁력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시 관계자는 "대전시는 이미 세계적 연구 인프라와 기술력을 갖춘 만큼, 앞으로는 이를 산업화와 글로벌 시장 확장으로 직접 연결하는 데 정책적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라며 "바이오기업이 R&D에서 임상, 제조, 해외 진출까지 한 도시 안에서 완결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해 대한민국 바이오산업의 새로운 표준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머크사는 지난 2024년 5월 29일 둔곡지구에서 바이오프로세싱 생산센터 기공식을 개최했다. 대전시 제공
대전시는 지난 7월 15일 유성구 전민동 일원에서 바이오창업원 건립공사 착공식을 개최했다. 대전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