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 공공기관 노쇼 사기의 심리적 설계
공공성 내세운 요청에 신뢰 형성 안정감 악용해 개인·사회 등 피해 모두가 나서 공동체 질서 지켜야
최근 급증하는 공공기관 노쇼 사기 사건은 단순한 예약 부도나 일회적 기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정교한 심리적 설계가 작동한 범죄이다. '군부대 행사', '지자체 워크숍', '공무원 단체 주문'과 같이 공공성을 전면에 내세운 요청은 상인들에게 즉각적인 신뢰감을 형성하게 만든다. 정상적 거래처럼 보이는 주문 이후, 범인은 준비한 대리구매 요구와 송금 계좌를 제시하고, 거래가 성사되자마자 흔적 없이 사라진다. 뒤늦게 확인된 위조 문서·변작 번호·허위 직책 등은 이 범행이 충동이 아니라 신뢰 형성을 목표로 한 단계적 조작의 결과임을 드러낸다. 특히 공공기관의 권위적 이미지를 이용한 점은, 피해가 단지 금전적 손실을 넘어 지역경제 전반의 신뢰 구조 자체를 겨냥한 공격이었음을 시사한다.
핵심은 범죄가 피해자의 판단력을 정면으로 공격한 것이 아니라 '신뢰의 조건'을 먼저 만들어 심리적으로 포획했다는 점이다. 가해자들은 상인들이 공공기관에 대해 가지는 기본적인 호의—정상적 절차, 안정된 결제, 정직한 의무감을 계산적으로 활용했다. 단체 예약이라는 큰 기회를 먼저 제시해 긍정적 기대를 높이고, 이어 "기관 규정상 직접 결제가 어렵다" "긴급 납품이라 절차가 다소 다르다"는 설명을 덧붙여 비정상적인 요구조차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만든다. 피해자의 의심을 무력화한 것은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라, '이럴 수도 있다'는 상황적 개연성을 치밀하게 만든 기만의 구조였다. 이는 거래 당사자 개인의 성향보다, 공공성을 띤 환경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을 전략적으로 악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가해자들이 실제 공공기관 종사자였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피해자들이 그들을 공공기관 소속이라고 '확신하게 된 과정'이 어떻게 설계됐는가이다. "공무원입니다", "행사 물량입니다"라는 표현은 단순한 자기소개가 아니라, 사실 확인 절차를 건너뛰게 만드는 심리적 단서로 기능했다. 여기에 단체 주문이라는 큰 규모의 요청이 더해지면, 피해자는 거래를 의심의 대상이 아니라 '놓칠 수 없는 기회'로 해석하게 된다. 그 기대가 형성된 순간, 위조된 문서와 직인, 그럴듯한 직책, 공손하지만 단정한 말투가 실제 공공기관 거래라는 인상을 강화하며 의심의 여지는 더욱 줄어든다. 결국 피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정보의 진위가 아니라 '진짜처럼 느껴지도록 구성된 환경'이었고, 판단은 그 구조 속에서 자연스럽게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이 범죄를 단순히 주의 부족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핵심을 놓치는 접근이다.
물론 이러한 심리적 흐름이 존재한다고 해서 계획적 사칭과 대리구매 요구, 변작된 연락망 등 구체적 실행의 책임이 가해자에게 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사기가 단순한 기망을 넘어 '신뢰의 구조' 자체를 조작해 정상적인 판단 과정을 차단했다는 것이다. 공공기관이 가진 안정성, 절차적 신뢰, 공동체적 역할은 원래 사회를 지탱하는 자원이지만, 그것이 악용되기 시작하면 문제는 개인의 실수에 머물지 않는다. 반복되는 사칭은 결국 신뢰 자체가 위험 요소로 인식되는 왜곡된 시장 환경을 만들어내며, 이는 지역경제의 취약성을 더욱 자극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실효성 있는 보호 장치다. 공공기관 외부 발송 문서·전화·직인 등에 표준화된 형식과 고유 인증번호를 부여해 QR코드·전자서명 방식으로 누구나 즉시 확인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지자체·통신사·금융기관이 연동된 사칭 의심 신고·확인·차단 플랫폼을 구축해 상인들이 간단한 절차만으로 위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나아가 상거래형 기망 행위도 피해 환급 제도 보호 범위에 포함될 수 있도록 관련 법률을 정비하고 소상공인 대상의 별도 구제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공공기관의 권위가 범죄에 악용되는 순간 피해는 개인을 넘어 사회 전체의 신뢰 기반을 흔든다. 따라서 이 문제는 더 이상 특정 업종의 사기 사건이 아니라 공적 신뢰를 지키기 위한 구조적 과제다. 사칭 범죄를 차단하는 것은 상인을 보호하는 수준을 넘어 공동체가 유지해야 할 최소한의 신뢰 질서를 방어하는 일이며, 그 대응은 국가·지자체·사회 모두가 함께 구축해야 한다. 신소영 중부대 경찰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