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초겨울, 바로크로 물들다…국악과 고음악이 만난 제11회 음악제

이달 8일 개막…판소리·첼로·오페라·바로크 듀오까지 연일 무대 까리시미 '예프테'와 동서양 원전음악 해석 두드러져…호평 일색 목원대 '메시아' 남아…황하연 대전음악협회장 "재미·풍성 가득"

2025-11-17     이성현 기자
대전시립연정국악원(이하 국악원)이 내달 6일까지 국악원 큰마당과 작은마당에서 '제11회 바로크 음악제'를 개최하고 있다. 사진은 행사 포스터. 대전시립연정국악원 제공

'제11회 바로크 음악제'가 지난 8일 개막 이후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이어오며, 내달 6일 열리는 목원대학교 '헨델 메시아'만을 남겨두고 있다. 올해 음악제는 원전악기를 중심에 둔 서양 고음악과 한국 전통음악을 동일한 축 위에 놓고 비교·확장하려는 시도가 두드러졌고, 판소리·창극·실내악·오페라 등 폭넓은 구성이 특징이다.
 

판소리 '수궁가'를 현대 무대언어로 재해석한 가족뮤지컬 '토장군을 찾아라'가 8일 관객들 앞에서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국악원 제공
판소리 '수궁가'를 현대 무대언어로 재해석한 가족뮤지컬 '토장군을 찾아라'가 8일 관객들 앞에서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국악원 제공

◇판소리에서 탱고까지…넓어진 스펙트럼

올해 음악제는 대전시립연정국악원 큰마당·작은마당을 중심으로 전통과 고음악, 창작과 복원을 모두 포괄하는 편성으로 운영됐다. 개막작인 가족뮤지컬 '토장군을 찾아라'는 판소리 '수궁가'를 현대 무대언어로 재해석해 가족관객층을 확보하는 동시에 전통소재의 확장성을 확인한 공연이었다.

오페라 무대 역시 존재감을 확보했다. 나래디보체 오페라단의 '라 보엠'은 소규모 구축이 어려운 오페라를 지역 성악진 중심으로 완성해낸 기획으로, 국악원 큰마당에서 푸치니 레퍼토리를 실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시인 로돌포와 미미의 이야기가 기존 오페라극장과는 전혀 다른 무대에서 구현되면서, 지역기반 오페라 제작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국립민속국악원의 창극 '지지지'는 음악제의 또 다른 지향점을 확인하게 했다. 개방형 수어 통역·자막·음성해설을 제공하는 무장애 공연으로 '장애 유무와 관계 없이 누구나 접근 가능한 공연'을 실현했다. 흥부가를 제비의 시선으로 재구성한 이 작품은 기존 창극의 형식을 유지하면서 접근성 관점에서 새로운 시도를 더한 무대였다.

작은마당에서는 실내악 중심의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바로크 리사이틀은 시대·국가별 바로크 레퍼토리를 비교할 수 있는 구성으로 진행됐고, 원전악기 공연은 음악제의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냈다. 이어진 트리오 가온의 무대는 브람스·셰드린·드보르자크 등 후기 고전-낭만 시대를 아우르는 편성으로, 음악제의 스펙트럼을 고음악 이후의 시기까지 확장했다는 평가다.
 

지난 12일 작은마당에서 '까리시미 & 헨델 오페라 아리아'가 열린 가운데 장광석 지휘자가 공연 해설을 하고 있다. 이성현 기자

◇까리시미와 헨델…바로크 초·후기 구조 드러난 무대

지난 12일 작은마당에서 열린 '까리시미 & 헨델 오페라 아리아'는 올해 음악제의 자료적·학술적 가치가 두드러진 공연이었다. 프로그램은 초기 바로크의 오라토리오 형식을 대표하는 까리시미의 '예프테 이야기'와, 후기 바로크 성악 양식을 보여주는 헨델 오페라 아리아를 하나의 서사적 흐름으로 배치했다. '예프테(입다)'는 성서 사사기 11장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해설·레치타티보·아리아·합창이 결합되는 전형적 초기 오라토리오 구조를 따랐다. 입다의 맹세, 귀환, 딸과의 충돌, 애가로 이어지는 구조는 당시 오라토리오가 지닌 종교적 드라마의 형태를 비교적 명료하게 보여준다. 특히 입다의 딸이 산으로 올라가 친구들과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장면은 선율·화성·합창이 결합된 바로크 초기의 음악적 표현방식을 확인하는 자료로 평가된다.

후반부의 헨델 아리아는 세속 오페라의 극적 요소를 바탕으로 성악기량과 감정 표현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까리시미와 헨델의 배치는 바로크 시대의 '초기-성숙기-후기'라는 음악사적 흐름을 한 공연 안에서 비교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이날 공연을 총감독한 장광석 지휘자는 인터뷰를 통해 "약 두 달간 준비했고, 원전악기를 사용할지, 현대악기로 재현할지를 두고 고민이 많았다"며 "이번 무대는 2025년에 사용하는 현대 악기 편성을 유지하되, 바로크적 흐름을 해치지 않는 방향으로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400여 년 전 유럽 음악을 대전에서 정기적으로 공연한다는 점, 그리고 여러 세대가 함께 무대를 구성했다는 점에서 지역 예술인으로서 의미가 크다"고 소회를 밝혔다.
 

내달 6일 대전시립연정국악원 큰마당에서 목원대학교의 헨델 오라토리오 '메시아'가 열린다. 사진은 공연 포스터. 국악원 제공

◇70년 전통 목원대학교, '메시아'로 음악제 피날레

음악제 최종 프로그램은 내달 6일 열리는 목원대학교의 헨델 오라토리오 '메시아'다. 목원대는 70년의 역사를 가진 지역 클래식 교육기관으로, 올해도 음악제의 폐막무대를 맡았다. 지휘는 김민표가 맡고, 솔리스트로 조용미(소프라노), 구은서(알토), 권순찬(테너), 성승욱(베이스)이 참여한다. 약 200여 명 규모의 목원대학교 연합합창단과 오케스트라는 헨델 '메시아'의 구성인 레치타티보·아리아·합창의 구조를 충실히 구현하며 대규모 편성의 오라토리오 무대를 제시할 예정이다.

이번 공연은 바로크 음악제의 마지막 일정이자, 지난 한 달간 이어진 프로그램들을 하나의 종합적 맥락으로 묶는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 교육기관 주도로 구성된 대규모 합창 레퍼토리는 지역 예술 생태계의 협력 구조를 드러내는 공연으로도 평가된다.
 

나래디보체 오페라단의 '라 보엠'이 11일 국악원 큰마당에서 공연되고 있다. 국악원 제공
나래디보체 오페라단의 '라 보엠'이 11일 국악원 큰마당에서 공연되고 있다. 국악원 제공

◇바로크는 어렵지 않다

대전음악협회장이자 그동안 바로크 음악제의 기획 구조를 정립해 온 황하연 회장은 올해 음악제 구성에 대해 "전통 바로크와 국악을 기본 축으로 삼되, 올해는 그 폭을 한층 넓혀 다양한 단체들이 가진 바로크적 요소를 보여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까지는 비교적 '오리지널 바로크' 팀 중심으로 꾸렸다면, 올해는 성악팀, 현대악기와 고악기가 함께하는 편성, 일본 전통음악을 다루는 팀 등 훨씬 다양한 방향으로 확장했다"고 말했다.

또 음악제의 '접근성'에 대한 오해를 언급하며, 바로크 음악이 어렵다는 통념을 반박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괜히 바로크 음악이 지루하다는 편견이 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며 "클래식 안에서도 훨씬 재밌고 풍성한 음악이 많다. 남은 공연들도 부담 없이 편하게 들으면 되는 음악들"이라고 강조했다.

황 회장은 끝으로 "대전에서 11년째 바로크 음악제를 이어오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이 도시에서 '바로크 음악을 일상처럼 접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라며 "남은 프로그램 또한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고음악을 경험할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