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야비야] 아득한 행정수도

용산 대통령실 청와대 이전 8km 후진 기어, 가볍지 않아 한강 못 건너는 정치가 문제

2025-11-13     나병배 기자
나병배 논설위원

용산 대통령 집무실이 청와대로 들어간다고 한다. 대통령실이 확인한 이전 시점은 다음 달 8일-14일까지다. 다시 청와대 시대가 열리면 용산 시대도 3년 7개월 만에 저물게 된다. 세월 무상의 일면을 느끼게 한다. 청와대 복귀는 예정된 수순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청와대를 부분적으로 수리해 쓰겠다는 의중을 밝힌 바 있다. 그 말이 연내 이전이라는 실제 상황으로 다가온 것일 뿐이다.

충청 입장에서 보면 청와대 유턴을 세종 행정수도 완성과 별개의 움직임으로 보기 어렵다. 성급한 판단으로 보일 수는 있다. 그러나 청와대 시대로 회귀하면 행정수도 완성을 지탱하는 세종 축에 상대적으로 힘을 덜 실리게 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기 때문에 문제다. 경제는 심리라는 말이 있듯 정부의 세종 행정수도 정책도 다르지 않다. 대통령실의 청와대 복귀는 현재 진행중인 다른 행정수도 관련 사업들을 압도하거나 가리는 '부(負)의 효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충청의 표정이 밝아지지 않는다면 대통령실과 세종과의 공간적 거리감에 대한 각성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대통령실이 청와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면 이와 연동하는 행정수도 완성도 아득해진다. 청와대 시대와 무슨 상관이냐고 나올 수도 있지만 대통령 소재지가 수도의 핵심 요건임을 감안하면 설득력 없는 소리에 블과하다. 이번에 청와대로 입성하게 되면 대통령 집무 공간은 곧 청와대라는 등식이 더 공고해지게 돼 있다. 예시한 심리적 측면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청와대와 용산 청사 간 거리는 남북 직선거리로 8km 정도다. 전 정부의 과오를 떠나, 대통령실 공간이 이만큼이나마 남진한 것이다. 청와대로 이전하면 이 거리조차 초기화된다. 숫자 여부가 아니라 대통령 소재지만큼 민감한 것이 없다는 말로 알아들어야 하는 비유적 화법인 것이다.

올해로 세종시가 출범한 지 13년째다. 중앙행정기관, 공공기관 이전 등에 힘입어 그동안 적잖이 성장해 왔다. 이 정도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행정중심도시로서 외양은 갖췄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국회 분원으로서 세종의사당에다 대통령 세종집무실 건립도 진행되고 있다. 정치·행정수도를 향해 순항하는 것처럼 비칠 만하다. 당연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보다 상당히 진일보한 것은 맞다. 다만 세종의사당도 세종 집무실도 행정수도 완성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에 못 미친다는 점은 부정하지 못한다. 각각의 총공사 기간도 길어질 소지가 있다. 실제 이전 여부는 차기 정부 때는 돼야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이런 가운데 대통령 집무실이 청와대로 옮겨간다. 이제 들어가면 다시 나오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할 수 있다. 용산 이전을 두고도 그렇게 말도 많고 탈이 많았던 터라 앞으로 누가 정권을 잡든 간에 청와대 문을 닫는 일은 상상 밖 영역이 됐다. 세종 집무실이 완성된다 해도 본질적으로 사정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완전 이전이 전제되지 않은 세종 집무실은 보조 공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대통령이 세종에 왔을 때 일이지 안 오는 날이 많아지면 세금만 축내지 않을까 저어된다. 예상 가능한 세종 집무실에 내재된 딜레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선거 때마다 반복 소모돼 온 행정수도 이슈다. 작년 총선 때만 해도 분원 형태가 아닌 국회 완전 이전을 여야는 경쟁적으로 공언했다. 반색한 충청권이었지만 역시 표심 공략을 위한 단골 멘트였음은 물론이다. 22대 국회 들어 범여권 인사들에 의해 대표 발의된 행정수도특별법안만 4건이다. 선거 때 했던 얘기를 법안으로 포장한 것임을 알지만 거기까지이며 거들떠도 안 본다. 내심이 다른 데 있다는 방증이 아니고 무엇인가. 헌재 위헌 판결이 난 후 21년 째 대통령실이 한강을 건너지 못 하고 있다. 한계효용체감이 바닥을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