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뛰며 담아낸 내포 동학농민군의 한과 눈물
역사는 민란이라 기록했지만 민중은 혁명이라 외쳐 실존 역사와 픽션의 절묘한 조합, 재미있는 줄거리 동도군(김상현 지음 / 이든북 / 399쪽 / 1만 9000원)
작가는 1894년 그날 민중의 외침이 없었다면 우리에게 오늘날 민주주의가 가능했을까라고 묻고 있다. 1894년 이 땅의 농민은 전체 민중을 대표했고, 동학농민 봉기는 단순히 폭정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사상을 바탕으로 신분제의 벽을 허물고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꾼 거대한 움직임이었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특히 충청 내포지역에서 전개된 농민전쟁을 배경으로, 가려졌던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되살려냈다. 수차례 현장답사와 자료조사를 통해 실제 사건의 뼈대를 세우고, 거기에 가상의 인물과 서사를 입혀, 뜨겁게 꿈꾸고 저항했던 민중의 숨결을 담아냈다.
동학정신은 3·1운동,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촛불혁명으로 이어지고, 역사의 고비마다 '사람이 하늘'인 개벽 세상을 향해 가며, 오늘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동도군'은 단순한 소설을 넘어 잊혀진 역사를 복원하고, 오늘의 우리에게 민주주의와 평등의 뿌리를 묻고 있다.
작가는 우연히 충남 태안에 갔다가 1894년 당시 동학의 접주였던 문장노의 증손녀인 문영식을 만났다고 한다. 농민군이 장렬히 전사하거나 죽임을 당한 이야기를 들으며 그 처절하고, 절박했던 130년 전의 사건을 글로 풀어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동분서주하며 당시의 인물들을 찾아내고 동학과 관련된 자료는 가리지 않고 모조리 읽었다. 농민군과 관군이 전투를 벌인 승전곡과 관작리, 홍주성과 해미읍성 면천읍성, 농민군의 애환이 서린 토성산과 목내미샘, 농민군이 격렬하게 싸웠던 백화산 등을 수차례 찾아갔다.
저자가 글을 쓰기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듯 1894년의 농민군들이 곳곳에서 고개를 내밀며 소설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빠짐없이 써달라는 듯 수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고 했다.
'동도군'은 합덕의 이정규가 자신이 받아야 할 수세를 대신해 안인무 생원의 계집종 야무네를 데리고 오면서 시작된다. 이정규의 수탈과 악행은 소작농들이 관아를 찾아가는 사건으로 이어진다.
여미벌에 집결한 6만여 농민군은 승전곡에서 신병기로 무장한 일본군과 경군, 소위 조일연합군을 격파했고, 파국지세로 예산 관작리에서 관군과 유회군(유림으로 조직된 군대)으로 편성된 토벌군을 쳐부순다. 홍주성으로 진군하면서 농민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른다. 그러나 홍주성 전투에서 패하고, 해미성 싸움에서 이두황의 관군에 다시 패해 흩어지게 된다.
역사와 픽션을 조합한 현장감과 재미있는 서사구조가 독자로 하여금 첫줄을 읽는 순간부터 끝까지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게 한다.
한국의 레마르크를 꿈꾸었던 저자 김상현은 베트남전에 참전한 기억을 살려 논픽션 장편 '미완의 휴식'을 펴냈으며, 올해는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 '사라진 병사'를 출간했다. 1989년 첫 시집 '달빛 한 짐 바람 한 짐'을 낸 후 2024년 '강물사색'까지 14권의 시집을 펴냈다. 편운문학상과 충남시인협회 본상, 평화신문 신춘문예를 수상한 바 있다. 2005년 단편소설 '시내산 옥탑방'으로 기독교타임즈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23년 '살루메가 있는 방'으로 진아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