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칼럼] 공감과 환자 중심성
"간호사님! 이렇게 할 거면 차라리 녹음기를 틀어주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필자가 '고객의 말씀'(민원)을 담당했을 때 한 보호자님이 화가 나서 하신 말씀이었다. 요는 이렇다. 응급상황으로 입원하느라 환자, 보호자 모두 경황이 없는 중에 담당 간호사가 자기 할 말만 하고 나갔다는 것이다. 환자와 보호자는 궁금한 부분도 많았는데 질문할 겨를도 없이 말이다. 그러니 잘못 들으면 다시 들어라도 보게 녹음이라도 해달라는 푸념이었다.
당시 필자는 보호자의 입장도 담당 간호사의 입장도 모두 이해가 됐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간호사의 이성과 질병으로 몸과 마음이 고단한 환자, 보호자의 감성이 충돌한 전형적인 사례였다. 물론 십여 년이 지난 이야기지만 아직도 이런 충돌은 진행 중이다.
'디즈니병원의 서비스 리더십'의 저자인 프레드 리는 디즈니와 의료기관은 모두 '경험산업'에 속해 있다고 이야기한다. 디즈니는 재미와 감동이라는 고객의 감정적 욕구를 함께하는 곳이고, 의료기관은 고통, 두려움, 연민, 걱정 등 디즈니와 정반대의 감정을 함께하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고통과 근심을 한 축으로 놓고 볼 때, 고통과 근심이 많아질수록 공감과 느낌 등 경험 패러다임이 작용하게 된다. 그렇기에 의료기관은 단순히 예의 있고 친절하기만 해서는 안 되고 환자의 상황과 감정에 공감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공감은 타인의 감정이나 상황을 이해하고, 적절히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일컬으며, 이러한 공감의 태도가 기반이 돼 있을 때 비로소 의료기관이 환자 중심의 시스템으로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위 고객의 말씀 사례에서 간호사에게 필요했던 부분이 바로 이 공감이었다. 환자의 상태, 상황에 공감하는 마음이 좀 더 있었다면 아마 당황해하는 그들의 비언어적 사인을 감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2000년대 들어 세계적으로 환자 관점이 의료 질 평가 및 보건의료체계 성과 평가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간주되기 시작하면서 우리나라도 환자 중심성을 평가하는 환자경험평가가 도입돼 시행되고 있으며 올해 다섯 번째 평가가 진행되고 있다. 환자경험평가는 의료기관의 환자 중심성 현황을 파악할 수 있고 개선의 방향도 확인할 수 있으므로 매우 중요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각 의료기관에서는 환자 중심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해 시설, 시스템, 인적자원 관리와 개선을 진행하고 있다. 만일, 이러한 과정 중에 환자 입장을 공감하지 못한다면 의료서비스 이용 과정에서 그들의 부정적인 경험을 제대로 판단할 수 없으며, 따라서 개선할 수도 없다. 공감이 배제된 상태에서 환자 중심 의료서비스를 구축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평가는 이용자의 몫이다. 내가 이용하는 의료기관이 환자에게 더 좋은 병원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이용자의 적극적인 참여와 정확한 평가가 필요하다. 이소라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간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