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년전 오늘] "3, 2, 1 발파!"…대전 명물 '중앙데파트', 추억 속으로
"3, 2, 1 발파!"
2008년 10월 8일 오후 5시 18분. 귀가 찢어질 듯한 폭발음과 함께 8층짜리 건물 한 채가 와르르 무너졌다. 34년간 한 자리를 지켜온 그 건물이 사라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5초였다. 과거부터 건물을 지켜봐 온 시민들은 건물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했다. 한 쪽에선 박수가, 한 쪽에선 탄성이 터져나왔다. 대전 최초의 쇼핑센터이자 랜드마크였던, 수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담겨있던 '중앙데파트'는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중앙데파트 앞에서 오후 2시 오케이?"
중앙데파트는 1974년 대전 중심 상권이었던 대전천을 콘크리트로 덮은 뒤 세워진 복개 건축물이다. 1970년대 건축물 중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며 목척교를 가운데 두고 마주한 홍명상가와 함께 지역의 '대장 건물' 역할을 톡톡히 했다.
중앙데파트는 '데파트'라는 이름으로 알 수 있듯 당초 백화점으로 지어졌다. 특히 당시 지금의 푸드코트 격인 '시식코너'라는 새로운 형태의 음식 코너를 운영하면서 입소문을 탔다. 중앙데파트 내 '수정궁'은 젊은이들이 한데 모여 차를 마시는 핫플레이스로 유명했다. 중앙데파트의 3분의 1을 차지했던 중앙관광호텔 맨 윗층엔 나이트클럽 '카사블랑카'가 있어 젊은이들의 유흥을 책임지기도 했다.
중앙데파트와 홍명상가를 중심으로 대전 원도심 은행동거리는 문화 예술의 산실로 거듭났다. 높아지는 인기로 한때 대전의 명동이라 불릴 정도였다. 제일극장, 예술극장, 명화극장, 대전극장, 서라벌극장을 비롯해 수정아트홀, 유락동 코파카바나 등이 사랑을 받았다. 중앙데파트와 인접했던 제일극장-대전극장 거리는 영화 상영이 끝나면 넘쳐나는 인파로 북새통을 이뤘다. 당시 젊은이들이 입버릇처럼 내뱉던 '중앙데파트 앞에서 만나자'는 말은 중앙데파트가 단순한 건물이 아닌 지역의 상징물이었음을 보여준다.
◇신도시의 등장…뜻하지 않은 재해
영원히 번영할 것 같았던 중앙데파트는 대전 신도심 개발이 시작되면서 서서히 빛을 잃어갔다. 서구 둔산동 일대는 1988년 노태우 정부 주도 아래 8.7㎢ 부지에 5만여 호 조성을 목표로 개발이 추진됐다. 1994년 준공 이후 대전시청을 비롯한 대전지방법원, 검찰청 등 주요 행정기관이 잇따라 이곳으로 이전하며 개발에 속도가 붙었다. 여기에 백화점과 은행, 병원, 기업들도 집중되면서 지역의 중심축이 사실상 둔산으로 기울어졌다.
신도시 개발 속도 만큼 원도심은 피폐해졌다. 그리고 그 중심엔 중앙데파트가 있었다. 1995년 중앙데파트에 동양어패럴 소유의 동양패션몰 중앙점이 들어섰고, 1999년엔 동방마트도 문을 열었다. 이후 IMF로 동양어패럴이 어려움을 겪자 동양패션물 중앙점은 영업을 종료했고, 대신 동방마트 2호점이 생겼다. 마트는 지역민의 호응을 크게 얻었음에도 신도심으로 빠져나가는 원도심 인구를 붙잡기엔 역부족이었다. '최초의 쇼핑센터'라는 명성을 넘어 문화의 중심지로 명성을 떨쳤던 중앙데파트의 몰락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예기치 못한 홍수 문제도 불거졌다. 중앙데파트 건설 당시 대전천에 설치된 수많은 기둥 사이로 부유물이 걸리면서 홍수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실제 홍수가 발생해 인근 시장 일대가 물에 잠기기도 했다.
◇'아듀 중앙데파트' 결국 철거되다
대전시는 결국 점차 흉물스럽게 변해가던 중앙데파트를 해체하기로 결정한다. 염홍철 당시 대전시장은 2006년 ㈜중앙데파트 측과 중앙데파트 철거 등의 내용을 담은 '목척교 살리기 상호협력 협약'을 맺었다. 중앙데파트 때문에 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목척교를 복원하고, 대전천에 물을 흐르게 해 생태시민공원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 핵심이었다. 경제적 파급 효과도 영향을 미쳤다. 중앙데파트 철거와 목척교 복원에 따른 경제효과가 1346억 원, 원도심 유동인구 1.5배 증가에 따른 경제효과가 523억 원등으로 총 1870억 원 규모의 경제 유발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후 박성효 시장도 뜻을 이어받아 중앙데파트 철거를 통한 대전천 생태복원 사업 추진에 박차를 가했다.
철거는 건물 주요부에 폭탄을 설치해 건물과 건물 밑 교각까지 주저 앉히는 폭파 방식으로 정해졌다. 도심 한가운데에서 8층짜리 건물이 폭파된다는 소식에 철거 당일 시민들과 취재진은 대전천변과 하상도로, 중앙로, 인근 건물 옥상 등으로 몰려들었다.
대전시는 발파식을 열어 중앙데파트의 마지막 모습을 기념했다. 대전시립무용단의 살풀이춤, 영상물 상영 등 순서가 끝나자 박성효 시장 등 주요 인사 15명이 앞으로 나가 발파 카운트를 셌다. 마지막 카운트까지 마치고 발파 버튼을 누르자 연막탄이 먼저 터졌다. 곧이어 굉음과 함께 중앙데파트가 무너졌다. 일대는 자욱한 먼지로 뒤덮였고, 구경하던 시민들은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순식간에 허물어진 자리엔 적막만이 남았다. 중앙데파트는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