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아이들 밥은 지켜야죠"…교장·교감까지 투입된 둔산여고 급식실

조리원 9명 중 7명 파업…교직원 투입해 급식 공백 최소화 석식 이어 중식까지 위기…학교 "10월 24일까지 긴급 대응"

2025-09-30     조은솔 기자
조리원들의 무기한 파업이 시작된 30일 대전둔산여고 급식실에서 교장·교감을 비롯한 교직원들이 직접 만든 급식 배식에 나서고 있다. 조은솔 기자

30일 오전 11시 30분 대전둔산여고 급식실. 평소 같으면 조리원들의 발길로 분주할 시간이지만, 이날 주방에는 교장과 교감, 행정실장 등 교직원들이 서 있었다. 위생모와 마스크를 쓴 채 피자를 자르고 반찬을 나르는 모습이 사뭇 낯선 모습을 자아냈다.

둔산여고는 이날부터 조리원 9명 중 7명이 파업에 돌입하면서 급식 업무가 사실상 마비된 상태다. 남은 인력은 조리장 1명과 기간제 조리원 1명뿐. 중식을 배식하기 위해 수업과 업무를 마친 교직원들이 급식실에 속속 모여들었다.

둔산여고의 급식 파행은 이미 1학기부터 이어져 왔다. 지난 3월 말 조리원 쟁의행위로 급식이 중단된 뒤, 학교운영위원회는 4월부터 석식을 아예 끊기로 결정했다. 조리원들이 요구한 조리 조건을 석식에까지 적용하면 중식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파업 확대로 중식마저 위기에 놓이면서 앞서 1학기 때 미리 보건증을 발급받은 교직원들이 투입된 것이다.
 

조리원들의 무기한 파업이 시작된 30일 대전 둔산여고 급식실에서 조리장이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들에게 배식 지침을 전하고 있다. 이날 급식은 파업에 불참한 조리원과 보건증을 갖춘 교직원들이 준비했다. 조은솔 기자

정오가 되자 학생들이 하나둘 급식실로 들어왔다. 교장과 교감 선생님이 배식대에 서 있는 모습에 놀란 기색을 보였지만, 곧 익숙한 듯 식판을 내밀었다. 삼삼오오 점심을 마친 학생들은 "하루빨리 석식도 먹고 야자도 하고 싶다"는 바람을 털어놓기도 했다.

배식은 1시간여 만에 무사히 끝났지만 급식실에는 여운이 남았다. 조리원들이 처우 개선을 내걸고 무기한 파업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대화의 장이 열릴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교직원 투입으로 중식은 이어지고 있으나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학교는 추석 연휴가 지난 10월 24일까지 교직원 중심의 '긴급 체제'를 유지할 계획이다.

급식을 마친 학생들은 운동장에 나와 햇살을 맞으며 수업 준비에 나섰다. 겉으로는 평온한 일상이 이어지는 듯 했지만 조금 전까지 차갑게 긴장감이 감돌던 급식실의 공기는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따뜻한 밥 한 끼는 지켜냈지만, 갈등이 풀리지 않은 채 이어지는 묘한 온도차는 그대로 엿보였다.

조리원들의 무기한 파업이 시작된 30일 대전 서구 둔산여자고등학교 급식실에서 한 교직원이 학생들에게 국을 배식하고 있다. 이날 급식은 파업에 불참한 조리원과 보건증을 갖춘 교직원들이 준비했다. 김영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