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광장] 공감과 책임의 시대, 리더십의 새로운 과제
우리 사회는 일제 강점기와 전쟁, 산업화와 민주화의 굴곡 속에서 끊임없는 격변을 겪어왔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리더십은 강력한 권위와 추진력을 기반으로 형성됐으며, 정부는 교육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통해 국가 발전의 초석을 마련했다. 그 결과 한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교육 강국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리더십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요구 역시 크게 달라지고 있다.
오늘날 리더십은 단순한 직위나 권위만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과거에는 강압적이고 독선적인 리더십이 일정 부분 용인됐지만, 이제는 오히려 조직의 신뢰와 성과를 해치는 요인이 된다. 특히 MZ세대와 MH세대가 기대하는 리더는 공감과 소통에 기반한 지도자다. 이들에게 리더는 절대적 권위를 행사하는 상사가 아니라, 원탁의 기사처럼 동등한 위치에서 의견을 나누고 갈등을 조정하는 중재자에 가깝다.
학문적으로도 이는 변혁적 리더십(transformational leadership)의 특성과 맞닿아 있다. 변혁적 리더는 비전을 제시하고, 구성원을 배려하며, 지적 자극을 통해 잠재력을 이끌어낸다. 동시에 거래적 리더십(transactional leadership)을 병행해 단기적 성과와 안정성을 관리하는 복합적 리더십이 요구된다. 결국 오늘날의 리더는 불확실성과 혼돈 속에서 안정과 혁신을 동시에 충족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리더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이를 둘러싼 군중의 태도 역시 성찰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리더가 결정을 내리면 구성원이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제 대중은 더 이상 수동적인 추종자가 아니다. 정보기술과 SNS의 확산은 리더의 일거수일투족을 실시간으로 드러내고 평가하게 만들었다. 대중은 언제든 리더의 판단을 비판하고 책임을 묻는다. 그 결과 리더십은 일방적 지휘가 아니라, 끊임없이 설득하고 설명해야 하는 쌍방향 구조로 변모했다.
군중의 기대 또한 달라졌다. 단순히 성과를 내는 리더가 아니라, 공정성과 투명성, 그리고 공익적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리더를 원한다. 이는 바람직한 변화지만 동시에 리더에게는 과거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압박으로 작용한다. 리더는 대중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쉽게 권위를 잃고, 의도와 무관하게 여론의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군중은 리더십을 견제하는 주체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때때로 과도한 불신과 즉흥적 평가로 리더의 결단을 왜곡시키기도 한다.
리더의 자리는 언제나 외롭고 무겁다. 정상에 올라야 멀리 바라볼 수 있지만, 그곳은 춥고 고독하다. 오늘날의 리더는 단순한 외로움과 책임을 넘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법적·사회적·공익적 제약 속에 놓여 있다. 리더의 결정 하나하나는 곧바로 여론의 심판대에 오르고, 때로는 법적 문제로까지 비화된다. 공익을 앞세운 결단조차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왜곡되거나 사회적 갈등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어쩌면 오늘날 리더의 역할은 과거보다 훨씬 더 불리한 조건에서 수행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권위는 줄었지만 책임은 더 무거워졌고, 성과는 요구되지만 정당한 권한은 제약받는다. 군중의 시선은 더욱 날카로워졌고, 리더는 그 속에서 늘 시험받는다. 결국 리더십의 본질은 공동체적 가치 실현에 있지만, 그 길은 점점 더 고단하고 냉혹한 현실 속에서 검증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더는 여전히 결단하고 설득하며, 공동체를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그것이 혼돈의 시대에도 리더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이자, 리더십의 마지막 책무일 것이다. 허정민 충남대 동물자원생명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