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포럼] 에너지 파이, 나누지 말고 더 키우자

2025-09-23     
성지현 한국과학기술원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원전은 건설에만 15년이 걸려 현실성이 없다"고 언급하며, 임기 내 재생에너지 확대를 우선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처럼 정치권에서는 유독 재생과 원자력을 대립 구도로 묶는 프레임이 반복된다. 그러나 원전의 건설 기간을 재생에너지 확대의 명분이나 이유로 삼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에너지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해법은 언제나 에너지 믹스다. 특정 자원을 줄이고 다른 자원을 늘리는 제로섬 구도가 아니라, 각 에너지원의 장단점을 조합해 국가 전체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전략이 필요하다. 전 세계적으로 데이터센터, 수소, 전기차, 산업 공정열 등 전력·에너지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고, 어느 한쪽만으로는 이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재생은 재생대로, 원자력은 원자력대로 강점을 살려 병행해야 한다. 따라서 예산도 에너지 부문 전체 파이를 키우는 방향으로 확대해야 한다. 서로의 몫을 줄여서 '땅따먹기'처럼 경쟁시키는 것이 아니라, 국가 생존전략 차원에서 판 자체를 넓히는 발상이 필요하다.

또한 이 대통령의 "소형모듈원자로(SMR)는 아직 기술 개발이 안 되어" 실용적이지 않다는 메시지는 SMR에 대한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대통령 임기 5년 안에 실증이 어렵다고 해서, 장기적 국가 에너지 전략으로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당장의 가시적 변화를 쉽게 보여줄 수 있는 재생에너지 확대에만 치중한다면, 장기적인 국가 에너지 경쟁력을 스스로 약화시키게 될 것이다. 원자로 개발은 인허가와 실증 건설만도 최소 10년 이상이 소요되는 장기 과제다. 그렇기에 더욱 지금 투자를 이어가지 않으면 5년, 10년 뒤 세계 시장에서 한국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실제로 SMART원자로가 세계 최초로 표준설계인가를 획득했음에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실증과 수출이 지연되면서 한국의 SMR 시장 진입이 늦어진 안타까운 경험이 있다. SMART보다 안전성과 효율성을 높여 현재 개발 중인 혁신형 소형모듈원전(i-SMR)은 한국이 글로벌 SMR시장에 내놓을 차세대 독자 브랜드다. 지금 기술 개발의 발목을 잡는다면, 한국산 브랜드는 경쟁에서 도태되어 결국 SMR시장에서 배제 될 위험이 크다. 수십 년 간의 기술 축적이 오늘날 한국을 대형 원전 수출 강국으로 만든 것처럼, 정부는 10년, 20년 이상을 내다보는 꾸준하고 일관된 정책을 통해 대한민국이 차세대 원전 기술 강국으로 자리매김할 미래를 그려야 할 것이다.

SMR은 비발전 영역에서도 탄소 감축을 실현할 수 있다. 산업 공정용 고온열, 지역난방, 해운·항공 연료 대체, 수소 생산, 해수 담수화 등 지금까지 화석연료가 열원으로 사용되던 영역은 재생에너지와 송전망으로는 공급할 수 없다. 특히 고온가스로와 같은 차세대 원자로는 700℃ 이상의 열을 제공해 청정 수소 생산이나 산업 공정에 직접 활용할 수 있다. 안정적 전력과 고밀도 열을 동시에 공급할 수 있는 차세대 원자로는 탄소중립 달성에 핵심적인 청정 대안이다.

에너지 수요는 앞으로도 계속 늘고, 기후위기는 더는 늦출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느 쪽을 없애라'는 제로섬 접근이 아니다. 각각의 필요한 기술에 투자를 이어가며 에너지 전체 예산을 확대해야 한다. 그래야 국가가 에너지 안보와 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에너지 정책은 이전 기고에서도 여러 차례 강조했듯, 정치적 이해를 넘어 세대를 아우르는 국가 전략으로 일관되게 이어가야 한다. 재생에너지의 발전을 응원하듯, 원자력 또한 흔들림 없는 지원 속에서 지난 수십 년간 축적한 국제 경쟁력을 지켜내야 한다. 재생에너지는 지속적 발전을 통해 효율성을 높여야 하고, 에너지저장장치 같은 보조 기술이 함께 성장해야 한다. 동시에 원자력은 차세대 기술 개발과 신규 건설을 통해 산업을 확장해야 한다. 이렇게 미래세대의 선택지를 넓혀주는 것이, 단순 임기를 넘어 대한민국의 지속가능성을 내다볼 줄 아는 정부의 가장 기본적인 책임이다. 성지현 한국과학기술원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