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칼럼] 이야기의 힘

2025-09-21     
이소라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진료협력팀 간호사

필자는 어릴 적 옛날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했다. "옛날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필자의 오감을 자극했던 것 같다. 필자의 이런 옛날이야기 사랑은 거의 중독 수준이었는데, 가장 큰 피해자(?)는 외사촌 언니였다. 언니만 만났다 치면 "언니 옛날얘기 해줘"라고 졸라서 언니가 징글징글하다고 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언니가 말주변이 굉장히 좋았던 탓도 있었겠지만, 당시 필자의 생활 환경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영상 매체들이 많이 부족했던 탓도 있었던 듯하다. 필자의 이야기 사랑은 지금도 진행 중인데, 요즘은 휴대폰만 들어도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채널이 너무나 많다. 역사 이야기부터 옛 그림과 관련된 이야기, 영화나 건축 이야기 등등 내가 선택만 하면 원하는 분야의 이야기를 시간과 장소에 구애 없이 보고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야기 사랑꾼인 필자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이 아닐 수 없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사피엔스를 통해 다양한 인류 중 호모사피엔스가 지구에서 성공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뒷담화'를 통한 인지 혁명의 결과라고 언급했다. 즉, 허구를 만들어 상상의 질서를 세우고 이를 통해 사회적 집단을 이루게 되면서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추상적인 것들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까지 생김으로써 많은 낯선 사람들끼리도 공감과 협력이 가능해졌다고 하였다.

결국은 '이야기의 힘'이다. 이야기를 통해 인간은 정보를 공유하며 생각을 나눌 수 있게 됐고 이를 통해 신체적 기능으로는 어떤 동물과도 대적하기 어려울 정도로 약한 인간이 번성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공유하는 방법도 구전, 그림, 책부터 다양한 디지털 매체까지 등장하게 되면서 전파의 속도와 범위도 상상 이상으로 빠르고 넓어졌다. 현대의 우리는 집에서 전 세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니 그 정보의 양은 어마어마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정보의 홍수 속에 이제 인간은 올바른 정보를 찾고 선택해야 하는 과제가 생겼다. 정보를 공유하기 쉬워진 만큼 허위 정보도 증가했는데, 특히 인터넷 정보의 사실 여부를 파악하지 못해 여러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그릇된 정보를 무턱대고 믿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정확한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정보의 출처와 신뢰성을 확인하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해당 정보가 사실인지 개인의 의견인지 판단하는 것도 필요하다.

최근에는 '디지털 리터러시'라는 개념이 이야기되고 있는데, 이는 다양한 미디어를 접하면서 명확한 정보를 찾고, 평가하며, 조합할 수 있는 개인의 능력을 뜻한다고 한다. 이젠, 이야기가 가진 힘을 제대로 알고 내가 습득한 것이건, 내가 전달하는 것이건 정확한 정보가 공유되고 전파될 수 있도록 노력이 필요한 때다. 이소라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진료협력팀 간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