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건축] 의자, 가장 작은 건축

2025-08-27     
이승재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건축공학부 교수

어릴 적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교실을 가득 메우던 왁자한 웃음소리와 함께 한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바로 '의자 먼저 앉기'라는 이름의 작은 의식이었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약속된 궤도를 유영하듯 노래를 부르며 의자 주위를 맴돌았고, 음악이 멎는 순간 비어있는 단 하나의 자리를 향해 온몸을 내던졌다. 그 의자를 차지한다는 것은 승리의 환희이자 안도감이었고, 밀려난다는 것은 패배의 씁쓸함이자 소외감이었다. 우리는 아마 그때 온전히 나를 받아주는 최소한의 영토, 즉 물리적 안식처의 소중함을 본능적으로 체득했는지도 모른다.

때로 의자는 단순한 사물을 넘어 하나의 인격체로 우리 앞에 서기도 한다. 심리극 무대 위의 빈 의자는 부재하는 인물을 소환해 침묵의 대화를 이끌어내는 매개체가 되고, 오래된 사진관의 빛바랜 의자는 수많은 이들의 가장 빛나는 찰나를 흡수하며 시간의 지층을 묵묵히 간직한 증인이 된다. 이처럼 의자는 한 사람의 서사를 오롯이 품는, 세상에서 가장 작고 내밀한 건축물로 다시 태어난다.

위대한 건축가들이 거대한 건축물 설계와 더불어 유독 의자 디자인에 천착(鑽鑿)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작은 의자 하나에 건축의 비례, 구조, 재료에 대한 이해는 물론 인간의 몸과 마음에 대한 가장 심도 깊은 배려까지 담아낼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실험장이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건축의 길을 연 3대 거장, 르 코르뷔지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미스 반 데어 로에는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의자 디자인에 몰두했다. 이들에게 건축은 단순히 껍데기만 만드는 작업이 아니었다. 공간의 외부부터 내부 그리고 그 안을 채우는 가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통일된 철학으로 완성되는 바그너(Wagner)가 말한 '총체 예술(Gesamtkunstwerk)'이어야 했다. 이는 강철, 유리, 콘크리트라는 새로운 산업 시대의 재료로 건축의 혁신을 이끌었던 이들이 가구 역시 전통적인 목재에서 벗어나 강철 파이프나 합판 같은 신소재를 통해 건축과 통일된 조형 언어를 찾으려 했던 필연적 귀결이었다. 의자는 그들의 건축 철학을 인간의 몸과 가장 직접적으로 만나는 지점에서 구현하는, 그야말로 건축의 화룡점정과도 같았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자신이 설계한 주택의 모든 가구를 직접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의자는 종종 건물 전체의 형태와 기하학을 그대로 따르며 마치 건축의 일부가 제자리를 찾아 들어온 듯 완벽한 통일성을 보여준다. 미스 반 데어 로에는 "신은 디테일에 있다"는 자신의 말을 증명하듯, '바르셀로나 체어'에서 최소한의 구조로 최대한의 우아함을 표현하며 'less is more'의 미학을 완성했다.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을 '살기 위한 기계'로 정의했듯, 의자 역시 휴식을 위한 가장 합리적이고 기능적인 도구로 재해석했다.

본래 마루와 온돌로 상징되는 우리의 좌식 문화에서 개인의 자리를 통해 구별을 규정하는 입식 문화로의 이동은 우리의 공간 인식과 관계의 지형도 전반을 뒤바꾼 하나의 문명사적 전환이었다. 땅과 직접 맞닿는 좌식 문화의 공간은 위아래의 구분 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시선을 나누는 수평적 공동체를 지향했다. 공간의 기능 또한 고정되지 않아 식사를 하던 방이 저녁에는 침실로 변모하는 유연함을 가졌다. 그러나 의자가 놓이는 순간, 공간은 명확한 개인의 영역으로 분할되고 기능에 따라 고정된다. 우리가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의 높이가 달라졌고, 이에 따라 외부와 소통하는 문과 창의 크기와 위치도 변했다. 나아가 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맺음 방식까지 재정의했다.

하루의 여정을 마치고 돌아와 익숙한 의자에 몸을 기댈 때, 우리는 비로소 완전한 휴식과 마주한다. 어린 시절 그토록 찾아 헤맸던 단 하나의 의자는, 이제 하루의 고단함을 위로하고 내일을 살아갈 온기를 충전하는, 오직 나만을 위한 가장 작은 건축이 되어 그 자리에 있다. 이승재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건축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