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건축] 30% vs 51%
지역 사무소의 하루는 늘 선택의 연속이다. 당장 매출이 되는 입찰·수의·감리 일을 더 받느냐 아니면 몇 주를 태워 설계공모에 도전하느냐. 수도권의 많은 사무소가 공모에 맞춘 팀과 제작 체계를 상시로 돌리는 동안 지역 사무소는 다양한 수입원으로 현금을 지키는 구조다. 이 차이가 공모 참여의 기회비용을 키우고, 도전 자체를 망설이게 만든다. 그래서 출발선의 공정함을 보완하는 제도와 그 위에서 실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경쟁의 판을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
그동안 흔히 등장한 해법은 '지역 지분 30%'였다. 이름만 보면 균형 있어 보이지만 현장에서는 자주 다른 모습으로 굳는다. 핵심 설계와 콘셉트는 외부 팀이 주도하고 지역은 인허가·대관 협의 같은 주변부를 맡는다. 경기 명단에는 이름이 올라가지만 정작 그라운드에 오래 서 있지 못하는 셈이다. 실력은 쌓이지 않고 굵은 용역비의 흐름도 지역을 비켜간다. 30%는 참여의 기분은 줄 수 있어도 성장의 근거가 되기에는 얇다.
우리가 제안하는 51%는 풍경을 바꾼다. 여기서의 51%는 도면 항목을 잘게 쪼개 나누는 숫자 놀음이 아니다. 설계의 큰 단계를 통째로 책임지는 다수의 지위를 뜻한다. 기본설계 전체, 실시설계 전체 혹은 기본과 인허가가 이어지는 연속된 페이즈를 지역이 주도하는 구조를 상정한다. 기록과 문서의 최종 책임을 한 곳으로 모으는 총괄책임자(AOR)도 지역이 맡는다. 중요한 점은 내부 전공을 쪼개 혼란을 키우지 않고 큰 단계로 책임을 묶어 명확하게 가져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원칙을 덧붙인다. 핵심 설계와 콘셉트는 주관사가 70%를 주도한다. 즉, 프로젝트의 방향과 정체성은 주관사가 책임 있게 끌고 가되, 그 방향을 실제로 구현해내는 설계의 완결된 단계를 지역이 통째로 맡아 공동의 성과로 만든다는 약속이다.
단계를 통째로 맡으면 말이 달라진다. 일정과 리스크 관리의 창구가 한 곳으로 모이고 발주처와의 소통도 간결해진다. 지역 팀은 설계의 뼈대와 판단의 기록을 손에 쥔다. 그 결과 실적과 학습이 지역 안에 남고, 다음 프로젝트로 이어지는 내재 지식이 축적된다. 무엇보다 총 용역비의 과반을 구성하는 단계 책임이 지역에 돌아오면 '이 구조는 우리에게도 돈이 도는 구조'라는 확신이 생긴다. 보호장치에 기대어 이름만 올리는 참여가 아니라 실질 경쟁으로 전환할 유인이 생기는 것이다. 주관사가 콘셉트의 70%를 주도해도 지역이 기본이나 실시 같은 큰 단계의 완결을 책임지는 한, 프로젝트의 성과는 일방으로 기울지 않는다.
경쟁의 판을 짜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예선은 누구에게나 열어두되 본심 무대에는 지역 팀이 절반 안팎으로 설 수 있도록 시드를 보장하면, 지역 안에서 자연스러운 진검승부가 열린다. 이는 외부를 배제하는 장벽이 아니라 지역 내부의 상향평준화를 촉진하는 장치다. 보호가 아니라 판 깔기, 지분이 아니라 기회의 설계라는 관점이 중요하다. 경쟁이 촘촘해질수록 설계의 밀도와 실행력은 함께 올라간다.
평가의 눈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 화려한 CG와 보고서의 비중을 낮추고 현장조사와 이해관계자 협의, 구현 가능성과 운영 계획의 무게를 키워야 한다. 제출물 요구는 간결하게 다듬고 기초자료와 사전기획, 질의응답을 표준 포맷의 데이터룸으로 공개해 중복 조사비를 줄이자. 예선에서 탈락하더라도 최소한의 제작비를 보전해 지역 사무소가 과도한 비용 부담 없이 도전할 수 있도록 하자. '보여주기'보다 '해내기'에 점수를 주는 구조가 되면 자연스럽게 외형 경쟁에서 실행 경쟁으로 중심이 이동한다.
결국 숫자의 싸움이 아니라 태도의 선택이다. 30%는 참여의 가면을 씌울 위험이 있다. 51%는 책임의 얼굴을 드러낸다. 전자는 들러리를 만들고 후자는 주연을 요구한다. 핵심 설계와 콘셉트의 70%를 주관사가 주도하되 지역이 설계의 큰 단계에서 51%의 완결 책임을 지는 구조라면 이름만 올리는 동행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지역 건축사가 수도권의 대형 사무소와 자연스럽게 경쟁하고, 지면서 배우고, 이기며 성장하려면 지분 나눔이 아니라 단계 책임이 필요하다. 공정한 출발선과 치열한 경쟁 그리고 그 경쟁을 버틸 제도적 뒷받침이 만나는 지점에서 지역의 설계 생태계는 비로소 살아난다. 신동기 건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