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광장] 하이젠베르크의 실패

2025-08-12     
박승일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산업 현장에서 일하던 젊은 인공지능(AI) 전문가를 새 장관으로 맞이했다. 예상을 뛰어넘은 파격이다. 요새 인공지능이 발전하는 속도와 사회에 침투하는 모습은 마치 PC와 인터넷으로 정보통신 혁명이 일어나던 시기와 비슷한 느낌이 난다. 정부에서는 연구개발 예산을 복원하고 인공지능에 100조 원을 투자한다고 하니 우리나라 경제도 이 기회에 도약의 전기를 마련하면 좋겠다.

때마침 이재명 대통령이 국가 연구에서는 성공률을 따질 필요가 없다고 언급했다. 우리나라의 연구개발 사업은 높은 성공률을 자랑하지만,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도전적이지 않은 일을 하고 있으니, 성공률이 높은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콜럼버스가 스페인에서 인도로 가는 항로를 찾기 위해 서쪽으로 목숨 건 항해를 하는 대신, 불과 14㎞에 불과한 지브롤터 해협 남쪽으로 아프리카 대륙에 갈 새로운 항로만 개척하고 있는 격이다. 콜럼버스는 결과적으로 인도에 가는 데는 '실패'했지만, 그가 발견한 아메리카 대륙이 후일 스페인에 막대한 부를 가져온 것을 기억하자.

물론 기왕 착수한 연구는 성공하는 편이 좋다. 1942년 시작한 맨해튼 프로젝트는 불과 3년 만에 전대미문의 결과를 낸 대표적 사례이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천문학적인 자금과 수많은 인력을 투입할 수 있었던 이유가 크다. 게다가 워싱턴으로부터 비밀 임무를 맡은 그로브스 장군이 당대의 최고 과학자들을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뉴멕시코주 로스앨러모스에 모은 것도 주효했다. 그래서 맨해튼 프로젝트는 국가에서 과학기술에 대규모의 예산을 투자하는 빅 사이언스(Big Science)의 본보기가 되었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과학기술로 세계를 선도하고 있었고, 원자핵 분열을 가장 먼저 발견했던 독일은 왜 원자폭탄 개발에 실패했을까. 노력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우라늄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에 몇 년 앞서서 연구에 착수한 데다, 그 필두는 불과 31세의 나이에 양자역학으로 노벨상을 받았던 천재 하이젠베르크였다.

미국도 이 점이 궁금했나 보다. 전쟁에서 승리하자마자 당시 지도자급의 독일 과학자들을 영국으로 데리고 와 케임브리지에서 좀 떨어진 팜 홀(Farm Hall)에 가두고 그들 사이에 오간 대화를 도청한다. 혹시라도 독일에서 뭔가 숨긴 것은 없는지 알아내고자 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독일에서는 원자폭탄은커녕 원자로도 만들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후일 역사가들이 찾은 원인은 복합적이다. 우선 당시 독일의 상황이 녹록하지 않았다. 전쟁으로 인해 돈 들어갈 곳은 많은데, 결과가 불확실한 연구에 막대한 자원을 쓸 여력이 없었다. 거기에 더해 소수 민족 출신의 과학자들은 이미 독일에서 탈출하거나 수용소로 보내진 지 오래여서 인력난도 심했다. 연합국도 독일로 핵심 물자가 들어가는 것을 끊임없이 방해했다. 노르웨이에서 독일로 보내는 중수 수송을 막은 작전은 영화 '텔레마크의 영웅들'로 제작되기도 했다.

그런데 독일 역사학자 클라우스 헨첼에 따르면 이 와중에 하이젠베르크를 포함한 독일 과학자들은 각자의 소속 기관에 둥지를 틀고 서로를 공격하며 예산을 타내기 위한 경쟁에 몰두했다고 한다. 전후 방대한 조사를 진행했던 미국도, 전체적인 방향성 없이 여러 기관에 분산해서 진행했던 연구개발 양상을 하이젠베르크의 실패 원인으로 지목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최고 수준의 과학자를 유치해서 산업화를 이끌었지만, 현재는 비효율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비난에 앞서 대규모 연구 사업이 취지에 맞게 추진되고 있는지, 개인과 기관이 불필요한 경쟁에 내몰린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마침 정부에서 연구 사업 파편화의 주범으로 지목되곤 했던 연구과제중심제도(PBS)의 폐지를 논의 중이라는 소식을 알렸다. 이 기회에 출연연구기관이 소모적인 예산 경쟁의 굴레에서 벗어나 담대한 도전에 나설 수 있도록 세심한 정책이 뒤따르기를 기대한다. 박승일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