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훈 칼럼] 센과 치히로 그리고 KTX 공주역

공주역사 올해로 개통 10주년 거대한 역사, 하루 1100명 이용 사후라도 잘못 바로잡는 관행 세워야

2025-07-31     지명훈 선임기자
지명훈 선임기자

"선우야, 더 이상 지체하면 늦는다."

"네, 잠시만요…."

아들 녀석은 늘 꾸물거린다. 기차를 못 탈지 모른다는 경고성 채근에야 부랴부랴 따라 나선다. 내비게이션에 '공주역'을 써 넣는다. 벌써 여러 번 가본 길인데 그냥은 자신이 없다. 미로 같아서다. 내비게이션은 '19㎞, 24분 걸린다'고 알려준다. 요즘 충남 공주에서 지내 서울 손님 배웅차 공주역에 가는 일이 많아졌다.

공주역은 산넘고 개울 건너 있다. 산길을 돌고 돌다가 갑자기 거대한 건축물을 만나는 데 그게 KTX 공주역사다. 그 때마다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연상된다.

시골로 이사를 가게 된 치히로의 가족. 아버지가 운전 중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의문의 터널로 빠져 든다. 터널을 빠져나오는 순간 폐허의 거대한 건축물(폐허된 유원지)이 나타난다. 치히로는 놀란 나머지 입을 다물지 못한다. "뭐야, 이건… 이런 데가 있었어?"

아들이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거대한 공주역사의 위용에 놀라는 모습을 보고 치히로를 떠올렸다. 실은 공주역사의 규모는 다른 KTX 역사에 비해 약간 작다. 하지만 대개는 인적 드문 산골짜기의 아담한 간이역 정도를 예상했던 터라 놀라움은 크다.

역사에 도착하면 규모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한가한 또 다른 반전이 기다린다. 주차장은 붐벼 터지는 다른 KTX 역사와는 달리 무료인 데도 텅 비어 있다. 플랫폼에 올라보면 간이역처럼 승객이 10명 안팎에 불과하다.

공주시는 지난 4월 2일 KTX공주역 개통 10주년 행사를 열면서 보도자료를 냈는데 하루 이용객은 1100명이다. 시는 개통 첫해 하루 이용객이 384명이었으니 3배나 증가했다고 밝혔다. 계산이 틀리진 않았지만 통계적 착시를 부를 수 있는 설명이다. 어제 관광객이 1명이었는데 오늘 2명 왔다고 100% 증가라고 하면 '배율 왜곡' 아닐까. 그러고 보면 개통하면서 제기됐던 '유령역' 우려는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이처럼 공주역이 아직도 간이역 수준에 머무는 것은 당초의 위치 선정 잘못 때문이다. 수많은 논란 끝에 2006년 8월 공주역 위치가 이인면 신영리 지금 자리로 정해졌다. 직선거리로 공주시청까지 17㎞, 부여군청까지 26㎞, 논산시청까지 22㎞ 떨어진 곳이다. 역사를 유치하고자 하는 각 지자체의 요구를 모두 수용한 정치적인 결정이었다. 3곳 승객을 모두를 유치할 것이라는 기대는 3곳 승객 모두의 외면을 받는 현실로 바뀌었다.

공주역의 거대함에 놀란 방문객들의 다음 반응은 이렇게 세금을 낭비해도 되는 거냐 였다. 개인이나 회사라면 산골짜기에 편의점을 세우지 않았을 텐데, 나라돈 쓰는 사람들은 186억 원이나 들여 어이없는 일을 서슴없이 감행했다. 시민단체들은 "극단적인 지역 이기주의와 전근대적인 의사결정으로 정책이 집행된 대표적 사례"라고 꼬집었다.

지난 7월 16일 용인경전철 사업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혈세를 낭비한 공직자는 언제라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경종이었다. 재판부는 이날 이 사업을 추진한 이정문 전 용인시장 등에게 214억 원의 배상 판결을 내렸다. 이 소송은 용인시민 8명이 2013년 경전철 사업에 관여한 이 전 시장 등 공직자와 시의원, 수요예측을 담당한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원 등 34명에게 1조32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면서 시작됐다. 이번 판결은 2005년 주민소송 제도 도입 후 지자체가 시행한 대형 민간투자사업에서 주민이 승소한 첫 사례다.

우리 주변에 공주역이나 용인경전철과 같은 사업들이 또 있는지 되돌아 봐야 한다. 국가의 잘못된 수요 예측도 문제지만 지자체의 이기주의와 한건주의가 문제가 아니었는지 살펴봐야 한다. 올해는 지방자치 30주년이다. 중앙정부 권한의 이양과 확대도 중요하지만 이미 가진 권한을 세심하게 행사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