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광장] 대학은 변화를 따라갈 것인가, 이끌 것인가
한국 사회는 지금 '변화'라는 이름 아래 거대한 전환을 겪고 있다. 디지털 전환, 탄소중립, 반도체 초격차, 바이오 헬스케어 등 수많은 기술 중심 담론이 정부 정책과 산업 전략의 핵심에 놓여 있다. 대학도 예외는 아니다. 수많은 재정지원사업과 평가 체계가 이러한 흐름 속에서 대학의 방향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 변화는 누구에 의해, 누구를 위해 만들어져야 하는가? 그리고 대학은 그 흐름을 따라가는 존재인가, 아니면 그 방향을 설계하는 주체여야 하는가?
대학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기관이 아니다. 본래 새로운 가치를 묻고 제시하는 존재다. 진정한 기술 주도형 변화란, 대학이 스스로 기술과 사회, 인간과 미래를 통합적으로 바라보고, 독자적인 철학과 비전을 세우는 데서 출발한다. 산업계의 수요에만 의존하는 구조 속에서 대학의 학문은 점점 도구화되고 있으며, 이는 대학이 지닌 본질적 의미를 희석 시킨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철학자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Ubermensch)', 즉 초인의 개념을 다시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위버멘쉬는 기존의 질서나 권위에 순응하지 않고, 스스로 삶의 기준과 가치를 창조하는 존재다. 오늘날 대학에 필요한 자세 역시 그러하다. 단순히 정부의 정책 기조나 재정 흐름을 쫓기보다, 시대가 묻지 않는 질문을 먼저 던지고, 그에 대한 해답을 과학과 인문, 기술과 윤리를 아우르는 방식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이 위버멘쉬가 된다는 것은, 빠르게 흘러가는 기술과 정책의 속도에 끌려가지 않고, 그 방향을 주도하고 설계하는 힘을 갖는다는 의미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비단 대학만의 일이 아니다. 최근 초·중·고 교육에서도 'AI 수업', '디지털 리터러시', '진로 설계형 교육' 같은 이름 아래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이 단순한 기술 훈련에 그치지 않고, 비판적 사고와 가치 판단 능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이어져야 한다. 기술을 배우는 교육이 아니라, 기술을 해석하고 넘어서려는 교육, 그것이 미래 세대가 진정한 변화의 주체로 성장하는 길이며, 대학은 그 마지막 관문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지닌다.
물론 정부의 정책 방향이 항상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해외 출장을 다니다 보면, 대한민국이 얼마나 기술과 시스템 측면에서 앞서 있는지를 체감하게 된다. 인천공항 같은 스마트 인프라만 보더라도, 정부가 추진해온 디지털 정책과 대중 친화적 행정의 수준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음은 분명하다. 수많은 정책적 시도가 산업 생태계의 기반을 다진 것도 사실이며, 이는 충분히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그것이 지속가능한 변화의 구조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대학 내부로부터 비롯된 자율적인 기술 비전과 학문적 철학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대학은 정부의 정책 파트너가 아닌, 사회 전체의 방향을 설계하고 책임지는 지식 주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필자는 해외 대학을 방문할 때마다, 대학이 국가 정책보다 먼저 미래를 설계하고 실험하는 풍경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미국의 MIT나 스탠퍼드, 유럽의 ETH 취리히, 네덜란드의 바헤닝헨대학 같은 곳은 산업계보다 앞서 학문적 상상력과 기술 통찰을 바탕으로 실험적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정부는 이를 뒷받침하는 조력자 역할을 한다. 반면 한국은 캠퍼스 안의 디지털 인프라, 전자 행정, 교육환경 등 '시스템'은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지만, 정작 원천기술 개발이나 핵심 의제 설정에서는 여전히 '정부 계획'에 수동적으로 연동되는 구조가 많다. 다시 말해, 틀은 앞서가지만 질문과 창의는 뒤처지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는 셈이다.
지금의 기술 중심 사회는 단지 산업계의 성장뿐 아니라 인간의 삶, 공동체의 가치, 윤리적 선택을 포함하는 복합적인 전환의 시대다. 인공지능의 윤리, 생명공학의 경계, 기후 기술의 책임 문제는 단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이 앞장서야 할 철학적 과제다.
이제 대학이 스스로 자문할 때다. 우리는 기술을 소비하는 대학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기술을 통해 새로운 문명과 가치를 설계하는 위버멘쉬적 대학이 될 것인가.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There is no new thing under the sun)"는 말처럼, 세상은 반복되는 질문들로 가득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가 다시 묻고 다시 쓰려는 노력만큼은 결코 헛되지 않다. 대학이 먼저 그 의미를 새롭게 써 내려갈 때, 비로소 진짜 변화는 시작된다.
허정민 충남대 동물자원생명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