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썩은 냄새에다 폭염으로 숨이 턱"…출하 앞둔 메론·수박 '진흙 범벅'

예산군 신암면 조곡리 일대, 농가 수해복구 현장 가보니

2025-07-21     유혜인 기자
장동진(64) 씨가 수해로 무너진 충남 예산군 신암면 조곡리의 한 침수됐던 비닐하우스 안에서 메론과 시든 넝쿨을 정리하고 있다. 김영태 기자

"농사일 30여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에요. 처음엔 '내가 악몽을 꾸나' 했죠."

21일 오전 찾은 충남 예산군 신암면 조곡리 일대. 수확을 앞두고 탐스럽게 익어가야 할 여름 밭은 흙탕물에 파묻혀 있었다. 비닐하우스 수십 동이 무너졌고, 안에 심어져 있던 메론과 수박은 썩어 문드러진 채 악취를 뿜었다. 며칠 전 내린 괴물 폭우가 수확을 앞둔 제철 과일을 삼켰다. 하우스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진흙탕 물을 뒤집어 쓴 메론과 수박은 그렇게 고약한 냄새를 내뿜으며 썩어가고 있었다.

이날 복구에 나선 자원봉사자 등 100여 명은 현장에 모여 진흙에 뒤덮인 작물과 떠내려온 쓰레기들을 바삐 치웠다. 열기를 머금은 하우스 안은 썩은 메론, 수박의 역한 냄새와 함께 지열까지 더해져 봉사자들의 숨통을 조였다.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폭염이 가득한 하우스 안에서 메론과 수박 줄기를 걷어내는 얼굴에는 금세 굵은 땀방울이 맺혔다. 그나마 봉사자들의 힘이 더해져 복구된 하우스는 12동. 이들은 이날 오전 9시부터 움직여 오후 1시쯤 작업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아직도 복구해야 할 하우스는 널렸다.

기막힌 현실에 농민들의 마음은 타들어 가고 있다. 이미 벌어진 일이라 빠른 복구를 해야 하지만 앞으로가 더 막막하다.

32년째 농사를 짓고 있는 장동진(64) 씨는 "하우스 한 동에 500만-600만 원의 매출이 나야 한다"며 "영농비만 해도 절반인데, 출하 직전에 수확을 전부 잃었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피해는 단순히 작물만이 아니었다. 비닐하우스 구조물은 무너졌고, 냉장고와 각종 장비들도 흙탕물에 잠겨 못 쓰게 됐다. 일부 하우스는 복구보다 철거 후 재설치가 나을 정도다. 하지만 보험사에서는 틀어진 구조물을 복구하라는 수준의 지원만 제시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빚을 내 복구를 해야 할 판이다.

이한호(60) 씨는 "무너진 비닐하우스는 그냥 밀어내고 새로 짓는 게 나은데, 보험사는 비닐만 벗겨서 구부러진 구조물을 고쳐 쓰라고 한다. 그게 오히려 인건비가 더 들어간다"며 "연말까지 쪽파랑 화훼를 심어야 하는데, 9월까지 복구되지 않으면 다음 농사도 포기해야 한다. 지금은 보험금 일부만 우선 지급된다고 하니, 나머지는 빚을 내서라도 복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다음 농사를 포기하면 손실이 더 커지니 막막하다"고 호소했다.

이한호(60) 씨가 폭우로 붕괴된 충남 예산군 신안면 조곡리의 한 비닐하우스의 철제 구조물을 일으켜 세우고 있다. 삽교천 범람과 재방 유실로 하우스 수십 동이 침수됐으며, 일부 구조물은 휘거나 꺾여 무너졌다. 김영태 기자

이번 집중호우로 충청권 전역은 큰 피해를 입었다. 충청권 농업시설 피해는 1173건, 주택 침수는 370채에 달하며, 충남지역의 재산 피해는 931억 원 이상으로 잠정 집계됐다. 피해 조사가 진행 중인 만큼 최종 규모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예산군의 수해 복구 예산은 8억 6000만 원에 불과하다. 군은 전체 피해액을 약 수천억 원으로 추산, 정부에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공식 요청한 상태다.

한편 충남도는 군·경·공무원·자원봉사자 등 1만 3700여 명을 투입해 복구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