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돋보기] 아! 편안한 나의 그늘이여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봄이 스치듯 지나가고 지구 온난화로 인한 여러 환경의 변화 속에 올해도 또 다시 맞이하는 여름은 또 다른 맛이 있다.
길가의 나무숲에 매달린 우렁찬 매미의 울음소리가 긴 인고의 끝에 찾아온 생명력을 드러내고, 여린 가지마다 애달프게 매달려있던 나뭇잎도 어느새 건강한 초록빛으로 우리를 맞는다. 논밭 위로 날아오르는 잠자리의 날개짓이 사라져 가는 자연의 숨결인양 한편으로 애잔하기도 하다.
가끔 뉴스에서 기름에 잔뜩 목욕을 한 왜가리의 힘겨운 사투와 거대 고래의 플라스틱이 가득찬 위장. 거북이의 목에 얽혀 있는 바다의 쓰레기들로 마음이 우울하기도 한 지금, 그럼에도 여전히 여름은 아름답고 고귀하다.
하늘을 찢어내는 듯한 번개와 그 뒤에 따라오는 뇌성이 잊고 있던 자연의 힘을 상기하게 하고 안하무인으로 세상을 지배하던 인간의 과욕과 무례함을 깨닫게 한다.
이러한 자연을 클래식 음악에서는 어떻게 담고 있을까?
카미유 생상의 '동물의 사육제'에 등장하는 각종 다양한 동물들.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의 빗방울 소리. 비발디의 '사계'에 나타나는 새소리, 천둥소리…. 많은 작곡가들이 자연의 아름다움과 동물. 곤충의 모습들을 음악에 담아 내었다.
이렇게 많은 곡들 중에서 혹시 게오르그 프리드디히 헨델의 오페라 '세르세'에 나오는 '옴 브라 마이 푸(Ombre mai fu)'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이 아리아는 '아! 편안한 나의 그늘이여'라는 뜻을 지닌 감미롭고 아름다운 성악곡이다.
오페라 세르세에는 아버지 다리우스왕의 연이은 패배를 극복하기 위한 세르세의 그리스 침공과 패배, 결국 페르시아로 철수 하는 쓸쓸한 내용이 담겨 있다. 세르세는 전쟁을 통한 삶과 죽음 그리고 인생의 덧없음에 대해 내면의 갈등과 고통이 있었으리라 짐작 할 수 있다. 우리도 인생사 살다 보면 고뇌와 번잡한 생각들로 삶이 힘겨운 시간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럴 때 누군가는 술과 흡연으로, 누군가는 여행으로, 누군가는 또 다른 자신만의 방법으로 잠시 삶의 고단함을 덜어낸다.
오페라 속 세르세는 원했던 승리의 쟁취에서 점차 사그러지는 희망을 보며 마음이 처참히 무너질 때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 앉아 지친 심신을 달래었다. 세상을 다 쥐고 있는 권력자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의 마음을 달래주는 것은 결국 한 그루의 나무 그늘이었던 것이다. 친구도 연인도 금은보화도 아닌 그저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평범한 나무 그늘이 그의 유일한 안식처라니 왠지 씁쓸하기도 하다.
나는 어떠한 안식처를 가지고 있는가. 또 한발 나아가 다른 누군가에게 안식처가 되어 주고 있는가. 비단 사람에게만 아니라 우리의 자연에게는 어떠한가. 자연으로는 바다 거북의 알에서 깨어난 아기 거북이들이 무사히 바다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변 근처의 빛을 최소화하고 해양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캠페인에 참여하고,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 등 모든 것들이 안식처를 제공하거나 안식처가 되어 주는 것이겠다. 사람들에게는 힘을 주는 말과 용기를 주는 다정함이 또한 그러할 것이다.
무더운 여름! 가만히 있어도 짜증 지수가 치솟기 쉬운 이때, 여름이 언제나 우리 곁에서 찬란할 수 있도록 내가 안식처가 되어 주는 그런 사람이 되어 보는 것은 어떨까? 세르세는 나무 그늘을 찾아 안식했지만 이제는 내가 누군가의 안식처가 되어 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과 행동을 취해 보자. 우리의 행복한 그늘이 온 세상을 비추어 우리 보다 행복해질 수 있도록 말이다. 이수정 남서울대학교 실용음악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