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포럼] 트럼프의 과학 공격
트럼프의 비상식적이고 예측 불가한 정책으로 말미암아 온 세계가 혼란스럽지만 미국 또한 예외는 아니다. 특히 과학계에 대한 대대적 예산 삭감과 인력 감축은 불과 2년 전 연구개발예산 16.6%(5조 원 이상)를 하루아침에 삭감했던 윤석열 정부의 기억과 겹치면서 내 발등의 불처럼 뜨겁고 아프다. 트럼프는 1기(2017-2021) 때에도 연구 예산과 인력을 삭감함으로써 저항에 부딪혔는데 이번에는 과학계에 대한 공격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은 1950년에 설립된 연방정부의 독립기관이다. 의학 분야를 제외한 기초연구와 교육을 지원한다. 2023년 회계연도의 연간 예산은 약 99억 달러(13조 8000억 원)이다. 트럼프 취임 직후인 지난 2월 NSF는 인력을 25-50% 감축하겠다고 발표했고, 2월에 즉각 직원 10%를 해고했다. NSF가 지원하는 연구 프로젝트는 트럼프가 잠재적으로 금지하는 과학자의 다양성 증대, 국제협력, 환경친화적 기술 등을 다루고 있는지 점검하기 위해서 연구비 지원 심사 패널 개최가 늦춰지거나 중단됐다. 2026년도 예산안은 무려 55% 삭감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생물의학, 공중보건 분야 연구를 지원하는 세계 최대 기구이다. 예산 대부분(83%)을 30만 명 이상의 연구자에게 지원하며, 예산의 11%는 자체 연구소의 과학자 약 6000명에게 지원한다. 암, 심장병, 당뇨병, 파킨슨병, 알츠하이머병 등의 원인, 진단, 예방, 치료 연구를 통하여 1970-2020년 사이에 미국의 사망률을 약 35% 낮추는데 기여했다. 트럼프가 등장한 이후 NIH 직원 25% 감축을 예고했으며, 2026년도 연구비 지원 예산은 기존 474억 달러(66조 원) 규모에서 약 200억 달러(27조 9000억 원) 감축한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1958년에 설립된 대통령 직속 우주, 항공연구기관이다. NASA의 과학장비 개발과 과학 프로그램은 우주뿐만 아니라 지구 생물과 물리시스템 작동까지 다룬다. 트럼프 취임 후 NASA는 수석 과학자를 해고했으며, 2025년에 254억 달러(35조 4000억 원)에 이르렀던 NASA 예산을 2026년에는 24% 삭감한다.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Diversity·Equity·Inclusion) 정책을 폐기하라는 트럼프 지시에 따라 여성, 유색 인종 우주인을 달에 최초로 착륙시키려는 계획을 철회했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전 세계 기후 변화 관련 데이터를 수집, 분석하는 대표적 기관이다. 일기예보, 해양어류관리, 기후변화 이해와 대응 회복력 구축에 필수적인 연구와 데이터 분석을 지원한다. NOAA의 2026년도 전체 예산은 44억 달러(6조 1400억 원)로 올해보다 16억 달러(2조 2300억 원) 줄었고, 핵심 연구부서인 해양대기연구국은 사실상 폐쇄됐다. 최근 발생한 미국 텍사스 홍수로 인한 참사는 트럼프가 재난 대응 관련 과학자들을 대거 해고함으로써 재난 대응 역량이 약화된 결과라고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이 지적하기도 했다.
과학연구를 수행하고 그러한 연구를 공익을 위해 응용하는 거의 모든 연방정부에서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과학자들은 미국 수십 개 도시에서 집회를 열기도 했고, '대통령, 행정부, 의회, 미국 국민들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 과학저널과 미디어에 비판적 기고, 법률 소송 등을 통하여 저항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과학자들이 유럽과 아시아로 이미 빠져나갔거나 빠져나갈 조짐을 보여 미국 과학 생태계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미국 공공 연구개발 예산을 25% 삭감하는 것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의 충격에 필적한다는 보고서가 있다. 트럼프의 과학계에 대한 공격은 결국 미국 과학자들만이 아니라 세계 모든 과학자들의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아인슈타인과 당대 과학자들이 핵무기 반대 선언문을 발표했던 것처럼, 이라크 전쟁에 반대해 한국 과학자들이 연대하고 행동했던 것처럼, 과학자들이 연구실의 벽과 국경을 뛰어넘어 하나의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 이성우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명예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