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야비야] 해수부 이전과 의대 증원 2000명

절차적 정당성·이전 당위성 결여 대통령 한마디에 일사천리 진행 전임 정부 실패 타산지석 삼아야

2025-07-17     은현탁 기자
은현탁 논설실장

이재명 정부가 속전속결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취임 이틀만인 지난달 5일 해수부 이전을 지시한 이후 불과 한 달 만에 이전 장소까지 확정했다. 정부 부처 하나를 옮기는데 아무리 빨라도 4-5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전례가 없는 일이다. 왜 이렇게 서둘러야 하는지, 또 다른 이유는 없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추진 과정을 보면 '졸속' 그 자체다. 절차적 정당성, 정책적 일관성, 이전 당위성 등이 철저하게 무시되고 있다. 무엇보다 세종시 행정수도 완성에 역행하고 있고, 이 대통령의 행정수도 공약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해수부 이전이 세종청사에 위치한 중앙부처들의 '탈 세종' 신호탄이 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설마 하겠지만 벌써 전남은 기후에너지부, 대구는 보건복지부, 울산·경남은 산업통상부, 광주는 문체부, 강원은 환경부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런 논리라면 세종시의 중앙부처는 공중분해 되고 만다.

법적 근거와 절차적 정당성도 결여됐다. 행복도시건설 특별법 16조는 외교부, 통일부, 법무부, 국방부, 여성가족부를 제외한 중앙행정기관을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이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5개 부처를 제외한 모든 정부 부처의 세종시 입지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특별법을 고치지 않고 해수부를 부산으로 이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법 개정 절차를 무시하고 부산 이전을 강행하고 있다.

찬반양론이 존재하는데도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는 것도 문제다. 해수부 이전은 부산에서는 찬성하고 있지만 충청과 인천에선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충청권 4개 시도지사와 시도의회, 시민·사회단체는 1인 시위에서 단식 농성, 결의문 채택, 시민문화제, 공개토론 제안, 5분 자유발언, 대통령에 공개서한 전달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가장 큰 이해당사자인 해수부 직원들은 86%가 반대하고 있고, 해수부 노조는 국회 앞에서 단식 농성까지 벌이고 있다. 이 정도면 한 번쯤 '대화의 장'을 마련할 만한데 정부는 꿈적도 하지 않고 있다.

해수부 이전 이유가 북극항로 준비와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것도 수긍하기 힘들다. 북극항로 개척은 해양분야뿐만 아니라 외교, 환경, 산업, 과학·기술을 총동원해야 하는 프로젝트다. 해수부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다른 부처와 유기적인 업무 협조가 필요한 사안이다. 해수부가 세종청사를 떠나면 오히려 국정 비효율과 낭비를 초래한다는 주장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 지역균형발전을 들먹이는 것도 웃긴다. 인구 39만 6000명 세종시에서 인구 325만 9000명 부산으로 이전하는 게 어떻게 균형발전인지도 의아하다.

이재명 정부의 해수부 이전은 윤석열 정부의 '의대 2000명 증원'을 떠올리게 한다. 사회적 합의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공론화 과정도 거치지 않았다는 점이 똑같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일사천리로 진행되면서 반대 의견이 철저히 묵살된 것도 마찬가지다. 의대 2000명 증원이 '총선용'으로 의심받았던 것처럼 해수부 이전이 '지방선거용'으로 의심받고 있는 것도 닮은 꼴이다. 대통령과 장관이 납득할 만한 근거 없이 우격다짐으로 '의대 증원 2000명이 과학적'이라고 말하거나 '해수부 이전 100배, 1000배 효과'를 주장하는 것도 비슷하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정부는 윤석열 정부의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의대 2000명 증원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4·10 총선에서 여당 참패의 결정적 원인이 됐고, 윤석열 정권 몰락의 단초를 제공했다. 해수부 이전이 이재명 정권에 어떤 형태의 나비효과를 가져다 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