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돋보기] 점,선,면을 걷고 또 걷는 시간의 순례자

2025-06-30     
양세히 갤러리메르헨 관장

나는 무엇을 그려야 할까. 머릿속이 하얘지고 가슴속이 텅 빈 채 한숨만이 알레르기성 재채기처럼 터져 나올 때, 윤종석 작가가 선택한 것은 무작정 걷고 또 걷는 일이었다.

296일간의 유럽 횡단 여행.

화가라서가 아니라, 직업인이라면 누구라도 불안했을 긴 시간의 공백.

미래에 대한 두려움, 아무 것도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을 그는 눈 딱 감고 휘적휘적 걸으며 결국 이겨냈고, 쟁취했다.

그렇게 탄생한 책이 있다.

'여행의 온도-윤종석' 부부화가의 유라시아 횡단 아트에세이다.

윤종석 작가는 한남대학교 미술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2001년 대한민국미술대전 우수상과 대전시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한국미술계에서 꾸준히 주목받는 중견작가로, 독창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아 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두바이 왕실 등 여러 기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유망 작가의 반열에 올라 있지만, 여전히 창작열에 목마른 작가다.

그래서일까. 순례길을 끝낸 윤 작가는 분명 달라졌다. 시간과 시간 사이의 여운을 직관하고, 그로부터 올라선 진실을 조심스레 드러내며 감정의 솔직함을 간결하게 표현할 줄 아는 한층 성숙한 작가로 나아가고 있다. 그의 작품은 응축된 시간의 덩어리였다.

윤종석 작가의 글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어느 날, 풍경이 가슴속으로 훅 들어왔습니다. 여행 중간중간 생각을 정리하고 에스키스로 옮기며 풍경을 단순화해 여운을 전하고 싶었지요. 돌아와서는 보드판에 200여 점을 그려보며, 방법들이 내 생각과 감정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걸 느꼈고, 본격적으로 캔버스 작업을 시작했죠. 벌써 2년이 흘렀습니다. 좋게 보면 늘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것이고, 나쁘게 보면 변덕쟁이 작가일 수도 있지만, 빽도는 없습니다.'

김민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과장은 "그 여행길에서 그는 수많은 번뇌 속에 흩어진 자신을 되찾기 위해 296일 동안 비우고 채우기를 반복하며 순례자처럼 걷고 또 걸었다. 그 결과 자신을 찾기 위해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을 버리고 버리기를 반복하였고 마지막까지 도저히 버릴 수 없었던 자신, 즉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리고 세상의 끝에서 다시 채운 색면(色面)이 바로 윤종석 작가가 찾은 회화의 순례길이다. 이 색면 회화는 여행 중에 보았던 풍경을 군더더기 없는 면으로 쌓아 올린 흔적의 층이다. 이것은 윤종석 작가가 그동안 천착해 온 점, 선, 면으로 귀결한 회화의 결과이며 조형 세계에 숨겨진 시간으로 치환된 결정체이다"고 평가했다.

세상의 끝에서 다시 채운 색면(色面)은 어떤 것일까.

텅 빈 공간, 그 문을 따고 들어가듯 시간이라는 열쇠로 점을 찍어 넣었다. 점은 존재가 되고 존재는 다시 시간의 궤도를 타고 시공간의 완전체를 향해 나아간다. 여기에 색이 더해진다. 색을 머금은 면과 면의 충돌은 화음을 이루고, 시간의 두께와 겹쳐지며 깊은 조화를 형성한다. 때로는 불협화음의 오묘한 여운까지도 담아낸다.

그의 작품은 현재 당진 아미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

'2025 현대미술 경향읽기'라는 타이틀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윤 작가 외에도 오지은, 이현정, 한지민 등 현대미술의 흐름을 짚을 수 있는 굵직한 작가들이 함께한다. 전시는 10월 27일까지 계속된다. 양세히 갤러리메르헨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