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돋보기] 군자의 이상과 염원, 거울에 새기다

2025-06-23     
이명옥 국립문화유산연구원 미술문화유산연구실 학예연구사

거울은 사람의 얼굴이나 외모를 비추어 단정히 하는데 사용하는 도구이다. 이러한 거울을 뜻하는 한자 '경(鏡)'은 '거울', '비추다'는 의미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거울로 삼다'라는 뜻도 가진다. 특히 옛 성인들의 말씀과 격언(格言)을 새긴 조선시대 청동 거울들을 통해 당시, 거울이 가졌던 의미와 가치를 돌아볼 수 있다.

'정의관(整衣冠), 존첨시(尊瞻視)'가 적힌 거울은 공자가 쓴 '논어(論語)'에 나오는 말이다. '군자는 항상 의관을 바르게 하고 남을 보는 태도를 존엄하게 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러한 내용은 거울 뿐 아니라 조선시대 학자들의 문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8세기 조선의 유학자였던 임성주(任聖周, 1711-1788)는 편지에서 어느 덧 70세가 된 자신은 '정의관, 존첨시'를 억지로 하려 해도 되지 않는다고 하며, 기력이 떨어져 이를 실천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탄식했다고 한다. 16세기 문신이었던 정개청(鄭介淸, 1529-1590)은 학문하는 자는 마음을 바르게 하고 몸을 닦는 것이 제일 우선인데, 의관을 바르게 하고(整衣冠) 남을 보는 태도를 존엄하게 하는 것(尊瞻視) 보다 절실함이 없다고 말하며 자신의 의복과 관대를 항상 단정하게 했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을 보면, 조선시대 군자에게 용모를 단정히 하고 시선을 바르게 하는 것은 꽤나 중요한 덕목 중 하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용모를 단정히 하려면 매일 거울을 비추고 자신을 살펴야만 가능한 일이다.

'견이려(見爾慮)'가 적힌 거울은 한나라 때 공자와 제자들의 예에 관한 학설을 편찬한 '대대례기(大戴禮記)' 무왕천조에 나오는 내용을 옮긴 것으로 '거울에 새긴 글로 너의 앞을 보면서(見爾前) 너의 뒤를 염려하라(慮爾後)'는 뜻이다. 이것은 과거와 현재를 거울로 삼아 미래의 후일을 조심해야 한다는 의미로 자신을 돌아보고 경계하고자 하는 마음을 거울에 새긴 것이다.

또 다른 거울에는 '경명(鏡銘)'이라는 글자를 새겼는데, 여기에는 달과 물처럼 밝고 맑게 스스로의 내면을 닦기를 염원한 마음이 담겨 있다. 조선시대 문집인 '금계집(錦溪集)'에는 먼지가 쌓인 거울이라도 하루아침에 씻어 버리면 다시 예전처럼 밝게 비출 수 있게 된다고 하면서 이를 빗대어, '마음을 각성하고 깨끗하게 씻는 공부를 통해 사리사욕의 마음을 제거하고 스스로를 새롭게 바꿀 수 있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거울에 새겨 스스로를 경계한다고 적었다.

이 밖에도 '덕후(德厚)' 가 적힌 거울은 '두텁고 높은 덕'을 뜻하는데, 거울에 쌓인 먼지를 닦는 것처럼 마음을 닦으면 덕이 높게 쌓인다는 말과도 연결된다. 또한 조선시대 때 백성을 덕으로 다스리고자 했던 유교의 사상, 덕을 실천해 도를 깨우쳐 선인의 뜻을 이루고자 했던 군자의 이상(理想)도 담겨 있다.

이러한 글자들이 새겨진 거울을 통해, 거울은 과거 용모를 단정히 하면서 시선을 바르게 하기 위한 생활용품이자 군자가 덕목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도구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매일 거울을 들여다봄으로써 자신을 끊임없이 경계하고, 이를 통해 이상을 실천하고자 했던 군자의 마음이 깊이 새겨져 있다.

요즘 우리에게 거울은 흔한 물건 중 하나일 수 있지만 조선시대 군자에게는 일상의 소지품,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바로 옛 성인의 말씀을 깊이 새기기 위한 성찰과 수행의 도구이자, 군자의 이상과 염원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명옥 국립문화유산연구원 미술문화유산연구실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