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광장] 세종 속았수다

2025-05-23     강대묵 기자
강대묵 세종취재본부장

무쇠의 울림은 강렬했다.

안방극장을 눈물로 적신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의 남자 주인공 '무쇠' 관식이는 이른바 '관식이병'을 불러 일으켰다.

이유는 간단하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시대의 아버지상을 그렸기 때문. 지금도 어딘가에서 출근 길에 오르는 아버지들은 '나도 무쇠가 돼야지'라며 넥타이를 고쳐 맨다.

관식의 울림은 왜 쉽게 잊혀지지 않을까. 공감 때문이다. 시청자의 공감을 산 드라마 속 캐릭터는 누군가의 롤 모델이 된다. 그러면서 시대를 변화시킨다.

현실 변화를 이끄는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한 시절, 국민 눈물샘을 자극하며 '공감'을 산 정치인은 사후에도 회자된다.

서민을 중심에 둔 정치인은 국민 눈높이와 마주한다. 예컨대, 발가락 양말에 슬리퍼를 신은 소탈한 모습의 사진 한 컷을 남겼다면 '공감'은 '친밀감'으로 승화된다.

그렇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러한 인물이다. 정파를 뛰어 넘어 국토균형발전의 시대적 과제를 불러 일으킨 '노무현 정신'은 여전히 기억되고 있다.

희대의 사건을 거친 6·3 조기 대선이 노무현 정신을 소환했다. 유력 대권주자들이 앞다퉈 '세종시 행정수도 완성'을 외치고 있다.

'소중한 한 표'를 위해 유권자와 공감을 시도하는 중이다. 이들은 관식이처럼,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국민들의 공감을 살 수 있을까.

세종시의 정치사를 들춰보면 물음표가 붙는다.

지난 20대 대선 과정에서도 '행정수도 완성'의 외침은 컸다.

2022년 3월. 세종시 조치원역 광장 무대에 오른 윤석열 전 대통령은 당시 후보 자격으로 "세종을 진짜 수도로 만들겠다"며 캐스팅보드를 쥔 충청 민심을 달랬다. 비슷한 시기.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도 세종공약 발표를 통해 "대통령 세종집무실 설치와 국회의사당 건립을 조속히 추진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19대 대선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판박이다.

문재인 당시 후보는 "세종시를 진정한 행정중심도시로 완성시켜 행정수도의 꿈을 키워가겠다"고 발언했고, 홍준표 당시 후보도 "세종시를 행정수도로 헌법에 명시 해야 한다"고 약속했다.

이번 21대 대선 과정에서도 '행정수도 완성 공약 시리즈'는 재방영 되고 있다. 마치 데자뷔다.

지난 수년간 거대 양당 대선 후보들은 '장밋빛 공약'을 쏟아냈지만 결국 '선심성 공(空)약'으로 사장됐다. 오히려 세종시는 행정수도 희망고문 아래 '공무원 도시', '베드 타운', '상가 공실'의 악재에 휩싸였다.

그 사이, 충청민의 눈초리는 더욱 매서워졌다. 공감은커녕, 폭싹 속았기 때문.

드라마 타이틀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 방언으로 '무척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애쓰다', '수고하다', '욕보다'의 의미다.

정말이지, 세종시는 선거철이면 욕보고 있다. 세종 시민들은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태동한 행정중심복합도시의 당위성을 알리기 위해 애쓰고, 수고하고, 욕보고 있다. 폭싹 속기를 반복하면서도 말이다.

그러면서도 기대를 저버리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 수도권 일극화 체제를 타개하기 위한 유일한 방안이 국토균형발전인 탓이다.

대한민국 중심에서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세종시가 자라나고 있다. 다소 흐릿했던 행정수도 완성을 위한 '사회적 합의'도 자라고 있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관식이의 명장면은 화려한 미사여구가 아닌 '침묵'이었다. 무쇠 같은 관식이는 말보다 행동으로 아버지상을 그려냈다.

6·3 조기 대선을 코 앞에 둔 현 시점. 욕보고 있는 각 후보들은 세종시를 무대로 사탕발림의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다. 충청민은 그 미사여구에 현혹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이번에는 정말이지, 폭싹 속지 않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