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야비야] '풍요 속의 빈곤' 국힘
조기대선판 열리자 물꼬 터진 듯 줄줄이 출사표 던지는 중이지만 한번 비벼보려면 모든 걸 쏟아야
6·3 대선 레이스가 시작됐다. 계엄 변고가 없었더라면 21대 대선은 2027년 3월 9일이다. 2012년 18대 대선까지는 그해 12월 19일이 고정 선거날이었다. 그러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임기 5년을 채우지 못하면서 19대 대선이 5월 9일로 앞당겨 치러졌다. 그로부터 60일 전인 3월 9일로 20대 대선일이 바뀌었다. 그 3·9 대선일이 이번에는 6월 3일로 옮겨간다.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변수로 인해 대선일에 또 변동이 온 탓이다.
이후 대선정국 전환을 신호탄으로 일거에 대선 물꼬가 터졌다. 대선판이 깔린 것이며 물 만난 듯 각 당의 대선 출마자가 꼬리를 물고 있다. 민주당 사정을 보면, 절대 1강 후보인 이재명 대표가 9일 당대표직을 사퇴했다. 대선 출마를 공식화한 것이다. 같은 날 김동연 경기지사도 미국 출장길에 나서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김 지사는 20대 대선을 목전에 두고 이 대표와 단일화를 선언하며 후보직을 사퇴한 바 있다. 이번에는 이 대표와 당내 경선에서 맞붙게 됐다. 이 대표에 대항해 어느 만큼 선전할 것인지가 관심이다. 또 누가 합류하든 상관없이 민주당 경선에서 이 대표를 제치는 이변이 연출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할 것이다.
상대적으로 국민의힘 당내 경선 과정이 눈요기가 될 수 있을 법하다. 게임 결과가 예측되면 흥미를 자극하지 못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반대로 '타율(지지율)' 불문하고 대선 출마 라인업이 풍성한 상황이면 관심을 유발하는 바탕은 될 수 있다. 대선 출마자 수 이슈만 보면 문전성시 자체다. 안철수 의원, 김문수 노동부 장관, 홍준표 대구시장, 이철우 경북지사, 유정복 인천시장이 대선 출마를 공식화한 상태다. 한동훈 전 대표도 10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오세훈 서울시장도 이번 주 출사표를 던진다. 유승민 전 의원의 경선 합류가 예상되고 원내 ·원외 인사 중에서도 서너 명 정도 경선을 뛰는 상황이 상정된다. '탄핵지형' 위에 도래한 '춘추잠룡시대'다.
이게 득이 될지 독이 될지 속단하기 어렵다. 숫자가 많다는 것이 유리한 정황만은 아닌 까닭이다. 특히 광역단체장들 출마 행진이 눈에 띄는데, 이중 나름 경쟁력 있을 것으로 보이는 인사는 소수로 한정된다. 홍 시장, 오 시장 정도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그간 정례 대선 주자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잡히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경선에 돌입하면 사정이 나아질 수는 있다. 그러나 이미 굳어진 여론 지지율 추세 및 당심 지형에 비추어, '다크호스'로 부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잠시 조명을 받아 인지도를 쌓는 기회로서의 이익은 있겠지만 본경선 진출 저력을 증명하지 못하면 경선 기탁금만 허비할 것이다.
현재 기준으로 국민의힘 대선 경선판을 규정한다면 '풍요 속 빈곤'이다. 사람이 넘쳐남에도, 요컨대 '회심의 카드'가 석연치 않다는 점에서다. 적자 생존 서바이벌 방식의 게임으로 가는 경선 플랫폼은 흠잡을 이유가 없으나 대권 3수, 4수생 등으로 꾸려진 경선 후보들의 확장성과 소구력이 발현되지 않으면 컨벤션 효과도 제한적이기 마련이다. 국민의힘이 직면한 현실적, 실체적 딜레마 지점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그 부족분과 관련한 '메기 효과' 같은 것에 대해 어떻게 가닥을 잡아볼 것인지 고민해 보는 것도 무용하지 않을 듯하다.
국민의힘은 내달 3일 대선 후보를 확정한다. 1·2차 경선 컷오프 단계를 거쳐 최종 본경선에 2명을 진출시키는 방안에 무게가 실린다. 경선 흥행성을 극대화하려는 포석일 것이다. 거기까지는 정해진 코스이며, 문제는 확정된 대선 후보가 민주당 후보와 비등하게 겨룰 수 있을 것인지 여부다. 탄핵 여진으로 전망은 당연히 무겁다. 그나마 비벼보려면 벼랑 끝 심정으로 모든 것을 쏟아내는 길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