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순의 충청女지도] 조선 마지막 여성문인… 시와 철학으로 삶의 품격 높이다

유교적 이데올로기 삶 실천 경전·역사서·주역 등 섭렵 철학가·문학가 발자취 남겨 여류문인 '정일헌시집' 편찬 子, 한시 65수·산문 1편 엮어 유가철학·인생사 등 담아내 남정일헌

2025-03-27     
남정일헌이 살았던 충남 예산읍 간양리 생가지. 문희순 문학박사·충청문화연구소 연구교수

태극은 바로 만물의 근원 되나니(太極斯爲萬物先) / 염옹의 태극도설 지금까지 전해지네.(濂翁圖說至今傳) // 기는 천지의 형체 없는 밖에서 운행하고(氣行天地無形外) / 이는 음양이 나뉘기 전에 갖추어져있지.(理具陰陽未判前) / 달빛이 온 시내 물 비추니 형상 가히 즐길만하고(月照萬川象可玩) / 수은은 천 개로 나뉘어도 형체 모두 둥글도다.(汞分千塊體皆圓) / 우리들 각각의 마음속에 태극이 있나니(吾人各有心中極) / 솟구치는 물의 근원 하늘처럼 넓고도 넓구나.(活水源頭浩浩天)

이 시는 '태극(太極)'으로, 남정일헌(南貞一軒, 1840-1922)이 지었다. 정일헌의 무르익은 성리 철학과 정제된 언어의 조탁이 하나로 어우러진 걸작이다. 정일헌은 시 '태극'에서 '염옹도설', 곧 중국 북송 시대 주돈이(1017-1073)의 '태극도설'을 언급하고, 만물화생의 근원에 태극이 있음을 전제했다. 시의 5, 6구에서 "달빛이 온 시내 물 비추니 형상 가히 즐길만하고, 수은은 천 개로 나뉘어도 형체가 모두 둥글다."고 표현함으로써, 이기·음양 이전의 우주론인 태극을 노래했다. 이것은 마치 남송 시대 주희(1130-1200)의 "대개 합해서 말하면 만물 전체가 하나의 태극이요, 나누어 말하면 하나의 사물마다 각각 하나의 태극을 갖추고 있다."라는 이론과 맥락이 같다.

정일헌은 하늘에 떠 있는 '달'이라는 '통체(統體)'가 땅에 있는 온 시냇물에 내리비춰 '각체(各體)'를 만들어 내는 '월인천강(月印千江)', 즉 천개의 달을 노래했다. 그리고 수천 개의 크고 작은 덩어리로 나뉜 수은도 그 이치는 모두 하나, 바로 둥글다는 것이다. 정일헌은 수은과 달, 태극의 원형의 형체를 대비시켜, 사람마다 천차만별의 크기로 존재하는 마음의 태극을 강조했다. 특히 마지막 8구에서 "솟구치는 물의 근원 하늘처럼 넓고도 넓구나(活水源頭浩浩天)." 라고 읊은 것은 주희의 '관서유감' 시 중 "근원에서 샘물이 솟구쳐 흘러오기 때문이지(爲有源頭活水來)"를 염두에 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정일헌이 표현해 내고 있는 시의 기상이 넓고도 커서, 주희의 시의 경지에 비해 결코 낮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남계우 작 '화조도 병풍'. 남정일헌의 종조부인 남계우는 그의 백년해로를 축원하는 의미로 꽃과 새를 그려 혼수로 선물했다. 문희순 문학박사·충청문화연구소 연구교수

◇모진 삶, 혼인 4년 만에 자식과 남편 다 잃어 = 정일헌은 조선 헌종 6년에 태어나 일제 침략 하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시대를 살았다. 근대 변혁기를 맞닥뜨려 서양식 교육과 신문명의 유입이라는 격랑 속에서도, 올곧게 유교적 이데올로기 속에서 살았다.

정일헌의 아버지는 군수를 역임한 의령남씨 남세본(南世本), 7대조가 조선의 대 문장가이자 영의정을 역임한 약천 남구만(南九萬)이다. 창녕성씨 성대호(成大鎬, 1839-1859)와 혼인해 충남 예산 간양리에 살았다. 정일헌의 시가는 성수침(成守琛)과 성혼(成渾)의 직계 후손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성혼의 학문은 후학들에 의해 '우계학파'라는 조선성리학의 한 주류를 형성했다. 시할아버지는 예조판서와 한성판윤을 역임한 성원묵(成原默), 시아버지는 현감을 역임한 성재선(成載璿)이다.

정일헌은 3살 때 한글을 깨우칠 정도로 영민했다. 정일헌의 할아버지 남영주(南永周)는 날마다 한자 수십 자를 써서 벽에 걸고 정일헌에게 일과를 삼게 했는데, 정일헌은 한 번 보면 곧 외웠다. 혼인하기 전까지 유교의 경전과 역사서를 두루 섭렵했다.

정일헌은 16세에 혼인해 18세 때 딸을 낳았는데, 아이는 태어난 지 1년 만에 죽었다. 그런데 아이가 죽은 지 채 3개월이 되지 않아 남편 성대호도 갑자기 병을 얻어 7일 만에 죽었다. 20살밖에 되지 않은 여린 여성이 겪어야 할 운명은 참혹 그 자체였다. 정일헌은 남편이 죽고 난 뒤 모진 운명 앞에서 자결을 시도했다. 그런데 시어머니 전의이씨의 현명한 대처로 목숨을 구했다. 시어머니는 "네가 죽으면 나는 어떻게 살란 말이냐? 서로 의지하며 같이 살다 죽는 것이 너의 효이니라"라고 어린 며느리를 타이르며 위로했다. 고부간의 통곡 속에서, 그렇게 정일헌의 목숨은 새롭게 태어났다.
 

남정일헌의 친정아버지 남세본이 사위 성대호의 죽음을 애도한 제문. 문희순 문학박사·충청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제공

◇고독의 세월, 시와 철학으로 완성한 삶의 품격 = 정일헌은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하직하기 전까지 고독하고 힘든 자신의 운명을 치유하고 수양하는 방편으로 주역 공부에 몰두했다. 주역 '계사전'에 나오는 '정부일(貞夫一)'을 취해 집에 '정일(貞一)'이라는 편액을 걸고 자신의 호를 삼았다. '정부일'의 뜻은 '사물의 변동은 무궁하나 마침내 하나의 이치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정일헌은 주역 철학의 깊은 경지를 섭렵하는 한편, "내 가슴 깊은 곳에 한 편의 시가 있다"라고 고백하며 시정(詩情)에 젖어 들었다. 하루하루의 삶의 방식은 유교적 여성상을 실현하는 데 몰두했으나, 가슴속 깊은 곳으로부터 일렁이는 문학적 감수성은 시린 삶의 한켠을 채워줬다. 문학작품을 궁리하고 엮어내며 자신의 삶을 위로하고 격조를 높였다.

정일헌의 작품이 축적돼 가면서 자연스레 친인척들 사이에선 '대가'로 존숭 됐다. 내외 집안 남성들이 정일헌의 시를 암송하기에 이른 것이다. 하여 정일헌은 철학자, 문학가로서 여성한문학의 마지막 세대가 되었다. 거기에 한글 가사작품 '남초가', '권효가', '규원가', '노인탄가' 등을 창작해 냄으로써, 한국고전여성문학사의 독보적 위치를 갖게 됐다.
 

남정일헌의 친필 '쇼학집뇨'. 문희순 문학박사·충청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세상살이 어려움 시로 달래 = 가슴으로 품은 아들 성태영이 어머니의 시집 '정일헌시집'을 엮어냈다. '정일헌시집'엔 한시 65수와 산문 1편이 실려있다. 성태영이 쓴 '묘지문'에 의하면, 정일헌의 친필 기록물은 갑오년 동학(1894년) 때 거의 불타 없어졌다. 성태영이 난을 피했다가 집으로 돌아와 그나마 남아있는 원고들을 수습했다. 그렇게 '정일헌시집' 1권을 엮어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해 볼 때, 정일헌의 작품은 지금 전해지는 것보다 훨씬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정일헌시집'에 수록돼 있는 한시작품 65수의 내용은 태극의 유가철학, 양자 입후와 모정, 친정부모의 그리움, 간양리의 사계와 풍정, 질곡의 인생살이, 탈속의 신선계에 대한 동경 등이다.

이제, 정일헌이 세상살이의 어려움을 노래한 시 '행로난'의 전문을 감상해 보고자 한다.

반평생 어두운 길 한 길로 달려왔나니, / 힘든 인생살이 모두 세차고 세찼도다. // 이르는 곳마다 기울고 위태로운 촉산의 길이요, / 언제나 거꾸러지고 뒤집히는 무협의 파도였다지. // 해를 당하고야 비로소 가슴 속의 가시를 아나니, / 그 누가 웃음 속의 칼 생각이나 했으리요? // 문 닫고 자취 감추어도 오히려 침노하는 고통, / 무릉도원 찾아가 복숭아 심는 법이나 배웠으면. (세상살이의 어려움(행로난·行路難)) 문희순 문학박사·충청문화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