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야비야] 이재명 우클릭 한 달

조기 대선 앞두고 실용주의 행보 민생지원금이 소비쿠폰으로 둔갑 과거와 현재 이재명 누가 맞는지

2025-02-27     은현탁 기자
은현탁 논설실장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요즘 부쩍 '우클릭' 행보를 하고 있다. 신년 기자회견을 기점으로 실용주의자로 변신했는데 한 달 이상 그가 보인 우클릭 행보는 그야말로 눈물겹다. 정치 지도자가 하루아침에 이렇게 바뀔 수 있나 싶을 정도다. 무엇이 이 대표를 180도 다른 사람으로 만들게 했는지 궁금해진다.

그의 우클릭은 조기 대선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5월 중순 '장미 대선'이 예상되고 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조기 대선을 겨냥한 '선거용 멘트'로 오해받을 수 있는 시기다. 차기 대선에서 중도층과 부동층을 끌어안기 위한 포석으로 비치는 것도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 대표의 우클릭 한 달을 살펴보자. 그는 지난달 23일 신년 기자회견서 "이념과 진영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 검든 희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 아니겠느냐"면서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을 들고 나왔다. 이념과 진영을 떠나 실용주의를 통해 경제 위기를 극복하자는 취지로 보인다. 하지만 왜 하필 이 시점에 이런 말을 할까 생각하면 바로 답이 나온다. 대선에서 표만 얻으면 된다는 전략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지난달 3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나 여당이 민생지원금 때문에 추경 못 하겠다면 민생지원금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자신의 전매특허나 다름없는 '돈 퍼주기'를 않겠다는 의미다. 대일·대미 외교도 우클릭을 하고 있다. 이달 1일 자 영국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에서는 "한일 관계가 적대적이지 않기에 한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한미일 해상 합동군사훈련과 관련해 "자위대의 군홧발이 다시 한반도를 더럽히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던 것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지난 3일 반도체특별법 토론회에서는 '주 52시간 근로' 예외 적용에 찬성하는 듯한 발언으로 정치권에 파장을 일으켰고, 지난 1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선 '성장'을 29번이나 언급하며 탈이념·탈진영 실용정치를 강조했다. 이런 발언 하나하나가 조기 대선을 앞두고 산업계의 표심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더니 이젠 대놓고 중도보수까지 자처하고 있다. 지난 18일 유튜브 방송에서는 "우리가 진보 정권이 아니다. 사실은 중도 보수 정도의 포지션을 실제로 갖고 있고. 진보 진영은 새롭게 구축돼야 된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깜짝 변신'을 무조건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진짜 우클릭을 하고 중도정책을 펼친다면 하등 나무랄 이유가 없다. 과거의 정책이 현실에 맞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수정하거나 폐기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정치 지도자의 발언이 일관성 없이 오락가락한다면 진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따지고 보면 말만 중도보수이고, 행동은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민주당은 추경예산안 편성과 관련해 '전 국민 25만 원 민생지원금'을 포기할 것처럼 했다가 지난 13일에는 이름만 바꿔 '전 국민 소비 쿠폰'을 들고 나왔다. 뿐만 아니라 주주 충실 의무를 확대해 기업경영을 위축시킬 수 있는 '상법 개정안' 처리까지 예고하고 있다.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의 일명 '노란봉투법'도 재추진한다고 한다. 이러니 이 대표가 '말 따로 법 따로'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급기야 이 대표는 지난 19일 "최근에 우클릭 얘기를 자꾸 하던데, 우리는 우클릭을 한 바가 없다"고 말했다. 과거의 이재명과 현재의 이재명 중 누가 진짜인지 궁금해지는 지점이다. 정치인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정직이다. 솔깃한 말 한마디로 국민들의 눈을 가리는 '잔꾀 정치'는 곧 탄로 나고 만다. 이 시점에서 이 대표 스스로는 자신을 믿고 있는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