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훈 칼럼] 아이히만과 ‘소극성의 숭고함’
아이히만 떠올리게 한 12·3 계엄 군경 지휘부, 계엄에 적극 동조 한강 "장병들, 소극성으로 저항"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다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 요원들이 길을 가던 50대 중반 남자를 납치했다. 1960년 5월 11일 밤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다. 이 남자는 이스라엘로 압송돼 이듬해 4월 예루살렘 전범 재판에 넘겨진다. 나치 친위대 장교로 2차대전 당시 '최종해결책(the Final Solution·유대인 대학살)'의 핵심 설계자인 아돌프 아이히만이었다.
이 재판에는 미국의 고급 잡지인 뉴요커 의뢰를 받은 저명한 여성 정치철학자가 현장 취재에 나섰다. 20세기 최고의 철학자인 마르틴 하이데거 제자로 전체주의를 파헤친 한나 아렌트였다. 그는 아이히만의 반전에 소스라쳤다. 희대의 악마를 예상했는데 그저 임무에 충실한 군 관료였기 때문이다. 유대인에게 적대감을 가질 특별한 배경도 없었다.
아렌트는 모두가 '유대인은 무엇을 겪었는가'에 주목한 이 재판에서 줄곧 '아이히만은 무엇을 했는가'에 집중했다. 그 결과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경악할 만한 진실을 발견했다. 정상적인 일상 행동과 극단적인 악의 행동은 연속선상에 있다는 의미다.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 '무사유(Thoughtlessness)'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그가 '말끔한 정장의 악마'라고 표현한 무사유는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 미칠 영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사고방식이다. 아이히만에게 최종해결책은 급식 배분과 다를 바 없었다.
아렌트는 장문의 현장 르포 5편을 뉴요커에 실었는데, 이는 명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토대가 됐다. 필자는 수년째 백석대의 유관순학 강좌에서 '유관순, 폭력(고문)의 세기, 그리고 악의 평범성'이란 특강을 하면서 이런 내용을 소개해왔다. 유관순 열사의 일제강점기와 한국 현대사의 고문과 폭력을 아렌트 이론으로 설명해 보려는 시도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극심한 고문을 당한 고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의 술회는 그 유용성을 말해준다. "고문 경찰들은 평범했다. 내가 고문으로 '짐승의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 딸의 전화를 다정히 받고 아들의 진학 문제를 걱정했다."
수업 말미에 예루살렘 재판부는 15가지 죄목으로 아이히만을 교수형에 처하는데 그쳤지만 아렌트는 '철학적 단죄'로 인류 모두에 경종을 울렸다면서 아렌트 강연 동영상을 보여준다. 다음의 핵심 메시지는 반복해 틀어준다. "내가 바라는 것은 예기치 않은 일이 닥칠 때, 사람들이 '생각'의 힘으로 파국을 막는 일이다." 수업을 끝내기 전 "여러분이 아이히만이라면 어떻게 할까"라고 묻는다. 이렇다 할 대답이 없는데 실은 필자 역시 그랬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을 보면서 작은 해답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국회에 투입된 특수부대원과 젊은 경찰들은 부당한 명령에 내적 갈등을 겪는 듯했다. 그래서 훈련 강도로 미뤄 전광석화 같아야 할 행동이 어리바리하기까지 했다. 막아선 시민에게는 머리를 조아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늘 적극성을 권유 받는다. 국회에 출동한 그들은 계엄명령에 충실했던 군경 지휘부와 달리 소극적 행동으로 저항했다.
예리한 한강 작가가 소극성이 숭고함으로 피어난 장면을 놓칠 리 없었다. 다음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그대로 읽어줘도 좋도록 섬세한 필치로 그려냈다. 계엄으로 한없이 추락한 대한민국의 위상을 한없이 끌어올린 지난해 12월 6일 스웨덴 스톡홀름의 노벨상 수상연설에서다.
"(그들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판단을 하려고 하고, 내적 충돌을 느끼면서 최대한 소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명령을 내린 사람들의 입장에선 소극적인 것이었겠지만 보편적인 가치의 관점에서 본다면 생각하고, 판단하고, 고통을 느끼면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했던 적극적인 행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