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충남에서 김서방 찾았다!
내 입맛 훔친 너,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거니? K-푸드 첨병, 충청 김
요즘 김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졌다. 가격이 크게 오르자 일상적으로 밥상의 한 자리를 차지해온 김의 존재감과 가치를 다시 보기 시작한 것이다.
김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김밥김, 파래김, 들기름김, 참기름김, 올리브김, 곱창김, 도시락김, 김자반, 김스낵 등 용도와 재료에 따라 수백 가지 김이 판매된다.
예전에는 대개 A4용지 넓이의 마른김을 한 두 톳 사다가 집에서 기름을 발라 구워 먹었다. 톳은 생김 100장을 묶은 것을 말한다. 그러나 요즘 김을 직접 구워 먹는 가정은 거의 없다. 손이 많이 가고 맛을 제대로 내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가까운 가게나 마트에 가면 각양각색의 맛있는 김이 널려 있다.
□ 조미김 생산 충남 119업체로 전국 최다
어느 바다에서 물김이 생산되고, 어느 공장에서 조미김이 만들어질까?
김은 대개 육지와 가까운 연안에서 양식된다. 9월에 채묘하여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물김(원초)을 거두고, 이를 일정한 크기로 말려 마른 김을 생산한다. 일부 김은 1차 가공한 마른김 상태로 팔리지만 요즘은 대개 김 전문 가공업체로 넘어가 '조미김'으로 다시 태어난다. 조미김은 말 그대로 마른 김에 각종 기름과 소금을 발라 풍미를 더한 김을 말한다.
김의 원료인 물김의 주요 생산지는 전남과 충남이다. 전남의 진도, 해남, 고흥, 완도, 신안에서 77.7%를 생산하고 전북 6.5%, 충남에서 6.2%가 나온다. 충남의 물김은 거의 대부분이 서천군에서 생산된다. 2022년 물김 생산량은 54만8천 톤으로, 품종은 방사무늬김이 70%를 차지했다.
김 가공 단계에 들어서면 충남이 두각을 나타낸다. 마른김 가공업체는 전남이 많지만 부가가치가 높은 2차 가공 즉 조미김 생산은 충남이 압도적이다. 전국 279개 업체 중 충남이 119개 업체로 가장 많고, 전남이 54개, 경기가 48개를 점유하고 있다.
충청권 회사가 전국 톱 10에 4개나 포진한 것도 눈길을 끈다. 전국에서 규모가 가장 큰 조미김 전문 기업은 충남 홍성의 ㈜광천김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액이 1860억원 대로 수년째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이외에도 대전의 ㈜성경식품, 보령의 대천김(주), 대천맛김(주)가 10위권 내에 포진했다. 이들 기업도 연간 매출액이 300억-1000억원 대에 이를 정도로 탄탄한 입지를 구축했다.
충청권 조미김 제조업체들은 첨단 기술과 설비를 갖춘 채 우수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위생 뿐 아니라 장비의 세척과 유지보수, 위해생물 관리, 보관, 유통 등에 이르기까지 첨단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지역의 조미김 제조업체들은 질 높은 상품을 갖고 해외시장에 경쟁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광천김의 경우 미국과 일본 등 해외 수출 비중이 전체 매출액의 60% 이른다.
□ 스낵류 등 팔아 지난해 충남 김 수출 2213억원
2023년 우리나라의 김 수출액은 7억7000만 달러로 원화 기준 1조원을 넘어섰다. 마른 김과 조미김 외에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스낵류가 많이 팔렸기 때문이다. 김 스낵은 K-푸드의 대표 주자로 떠올랐다. 친건강 다이어트 식품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김 수출 국가도 기존의 미국과 일본에 이어 동남아시아와 유럽까지 120여 개 나라로 늘어났다.
지난해 충남도내 기업의 김 수출액은 1억7037만 달러(한화 약 2213억원)에 달했다. 대한민국 전체 김 수출액의 23.2%를 차지하는 것으로, 전남(31.6%)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원료김(물김) 생산량는 전남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조미김과 스낵 등 2차 김 가공업은 충남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김 양식 및 제조는 서너 단계를 거치며 급성장했다. 1960년대 이전에는 자연 채묘에 의한 불완전 양식이 주를 이뤘고, 60년대 들어 일본에서 양식기술이 도입됐다. 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로 김 수출이 늘어나자 우리 정부는 양식 자재 개발과 품종 개량, 채묘기술 개발을 시작했다. 70-80년 대에는 이촌계뿐 아니라 개인 어업인이 생산에 참여했고, 일본에서 도입된 자동건조기로 인해 김 생산량이 크게 늘었다.
90년대 이후에는 김 양식에 사용되는 뒤집기식 김발 개발과 중성포자 기술 개발, 내병성 다수확 품종 개발로 질 높은 김을 대량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의 김 산업은 초기에 일본 기술에 의지했지만 90년대 이후 물김 생산은 물론 가공 분야까지 일본을 넘어섰다. 기업들이 우수한 한국산 원초김을 바탕으로 조미김 생산에 뛰어들어 세계시장을 선도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현재 세계 김 시장의 70% 넘게 점유하고 있다.
□ 원초생산-가공-해외수출 등 생태계 갖춰
충청권 조미김 생산 기업들이 성공한 것은 발 빠른 대응 덕분이다. 보령과 홍성, 서천 등 서해안권에 자리 잡은 김 제조업체들은 70년대부터 김 유통과 가공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주로 충남 서천과 전남의 물김을 구입하여 생김(마른김)으로 만들어 팔았다. 그러다가 90년대부터는 마른 김을 가공한 조미김 제조에 뛰어들었다. 아파트 문화가 확산되고 여성들의 취업이 늘어나면서 손쉽게 사다 먹는 조미김 수요가 늘어나는 것을 보고 이 분야를 적극 공략하기 시작한 것이다.
김 가공 업체가 생산하기 시작한 조미김과 김밥(스시)김, 스낵류 등 덕분에 2000년대 들어 김 제품 수출이 급성장, 2010년 1억 달러를 달성했다. 정부는 올해 수출 목표를 8억 달러, 2027년은 10억 달러로 정했다. 김이 수산물 수출 1위 품목으로 성장한 것이다.
충남도도 김 산업을 미래형 먹거리로 보고 적극적인 진흥정책을 펴고 있다. 김산업진흥구역으로 지정된 서천군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업을 발굴, 경쟁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올해에도 64억원을 들여 김발장 지원, 마른김 가공 친화경에너지 보급시설, 직매장 건립, 포장재 지원 등을 추진한다.
충청권은 질 좋은 김(원초김) 생산에서 조미김 가공, 수출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김 생산-가공-유통 시스템을 갖췄다. 한발 앞서가는 기업들 덕분에 자연스럽게 세계적인 김산업 생태계를 구축한 것이다. 충청권 김 산업의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다.
김성용 (주)광천김 대표 인터뷰
"4월부터 냉동김밥 공장을 가동하고 있습니다. 하루 8만-10만 개를 생산, 수출할 계획입니다."
국내 최대 조미김 생산 기업인 ㈜광천김의 김성용 대표는 28세의 젊은 경영인이다. 할아버지 김복만, 아버지 김재유(공동대표)에 이어 3대째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1970년 할아버지가 마른김 유통회사를 세우고, 아버지가 90년대에 조미김 가공업체를 세워 제조업에 뛰어들었다면, 김 대표는 현재 기업의 글로벌화를 이끌고 있다.
그는 국내 최대 냉동김밥 공장을 잘 운영하여 연간 5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게 당면 목표이다. 이를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기반을 구축하고, 글로벌 시장의 선두주자로 입지를 다진다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 등 4개국에 공장이 있습니다. 무역회사를 거쳐 간접적으로 수출하는 곳까지 더하면 광천김 수출국이 100개가 넘습니다."
㈜광천김의 해외시장 진출 역사는 20여년에 이른다. 2002년 일본의 라쿠텐에 처음 입점한 이래 꾸준하게 시장을 공략, 중국과 캐나다의 월마트에도 납품을 하고 있다. 요즘도 공동대표인 아버지와 함께 수시로 해외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
전통 먹거리인 김이 새로운 세대 경영인에 이르러 글로벌 시장에 속속 진출하는 게 이채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