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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 앞의 이중적 고뇌

2012-04-03기사 편집 2012-04-02 21:3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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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순 배재대 강사 국문학 박사

첨부사진1광주안씨 편지
"을사 삼월 초 길일의/실인 광주안씨는/삼가 남군 영하의 통곡하노니/오호 통재라/군이 이제 도라 가시매/양친이 재상하시니/지하의 눈을 감지 못 하리로다/오호 통재라/믿지 못 할 바는 하늘이라/차마 어찌 화앙 받음이 이에 미칠 줄 뜻 하였으리오/서로 만난 지 십 칠 년이로되/군이 누월을 나가 지내시미 잦아/실의 동거하미 십년이 못 하도다/ (중략) /오호 석재라/군의 인후하신 덕으로/화앙이 이에 이를 줄 뜻하였으리오/여자의 삼종지의 있다하나/자식이 장성치 못하였으니/당당히 뒤를 따를 것이로대/유명이 격하니/서로 말함이 없으나/당상의 양친과 슬하의 세 자식을/내게 의탁 하였을 것이니/이 뜻을 저버리지 못하여/이 궁천한 설움을 존절하고/곤규의 쇠잔한 목숨을 보전하나/장원한 하일의 투생코저하나/어찌 장구하기를 믿으리오/오호 석재라/군이 세상을 버리셔/이미 사십 일이오/또 어느덧 삼삭이라/이 마음은 서로 말 할 듯 하되/향할 곳이 없고/의연이 면목을 보는 듯 하되/유명이 격절하니 서로 보기 어렵도다/오호 통재라/여자 출가하매 지아비는 하늘이니/하늘이 무너지면 사람이 능히 살지 못하니/당당히 살지 못할 터이로되/두 아들을 보호하여/조선 후사를 잇고자하니/이 궁천한 설움을 어찌 참을 바리오(중략)."

이 글은 남영(南泳, 1753-1784)의 부인 광주안씨가 1785년(정조 9, 을사) 3월 초 길일에 쓴 것이다. 남편이 갓 서른을 넘긴 나이로 갑자기 운명하자 제문 형식의 글을 빌려 삶과 죽음 앞에 놓인 자신의 이중적 고뇌를 토로해 낸 글이다. 광주안씨는 인조 대에 좌의정을 지낸 춘성부원군 남이웅(南以雄, 1575-1648)과 남평조씨(1574-1645) 부부의 7대 손부로, 공주 반포 성강리에서 살았다. 특히 남평조씨는 한글일기 '병자일기'의 저자인데, '병자일기'는 병자호란 발발 이후 호서지역으로의 피란여정과 서울 귀환생활 3년 9개월(1636.12~1640.8)의 생생한 삶을 일기로 기록해 놓은 매우 귀중한 기록물이기도 하다.

광주안씨는 이 한 장의 글에서 부모보다도 먼저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며 하늘을 향해 울부짖으며 원망하고 있다. 남편과의 부부생활은 햇수로는 17년이나 되지만, 실질적인 동거는 남편이 밖으로 출입이 잦았던 까닭에 10년이 못 된다고 하였다. 갑자기 사망한 남편을 뒤따라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여자의 바른 도리이나, 남편이 남은 세 아이(아들 둘 딸 하나)를 잘 기를 것을 부탁하여 그 뜻을 저버리기 어렵고, 시부모가 살아계시니 그들을 봉양해야 함이 살아남아 있는 이유라고 말하였다. 특히 남편이 죽기 전 해에 광주안씨 자신의 병이 중하였는데, 자신을 바라보며 염려하고 눈물을 머금고 탄식한 남편을 생각하며 자신의 설움이 더욱 크다고 하였다.

이 한 편의 글 가운데 일곱 차례나 '아! 슬프고 원통하여라!(오호통재, 오호석재, 차호차회)'라고 탄식과 설움을 눈물로 써 내려갔다. 삼십을 갓 넘은 젊은 새댁은 남겨진 어린 세 자녀와 시부모 봉양, 살림이라는 인생의 대 전제 앞에 그 누구와도 서러운 심사를 펼쳐 내기도 어려웠다. 마음이 복받쳐 견뎌내기 어려운 설움만 하늘과 대답 없는 남편을 향하여 울부짖으며 통곡하였다. 남편을 잃고 살아가야 할 한 여인의 애절한 심정이 잘 나타나 있는 글이다.

그런데 광주안씨는 그 절박한 현실 속에서도 죽음을 선택하지 못한 자신의 고뇌, 곧 조선이라는 시대가 죽은 남편에 대한 살아 있는 여성의 태도를 주시하였던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있음이 무겁게 다가온다. 오늘날까지도 미망인(未亡人)이라는 단어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 조선사회의 폭력성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결혼과 이혼이 비교적 자유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한 번밖에 없는 이생의 삶을 생각한다면, 나 한 사람의 삶은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오늘은 또 역사의 한 지점이다. 대전지역의 역사 속에서 가문을 일구어냈던 선대 여성들의 삶을 잠시 떠올려 본다. 자신의 불편한 삶을 딛고, 가문의 역사와 미래를 일구어냈던 여성들 말이다. 그 선배 여성들의 삶 속에서 역사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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