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포럼- 황진영 한국항공우주硏 책임연구원

주류경제학에 해당하는 신고전 경제학자들의 전통적인 성장이론에 의하면 경제성장은 주로 자본과 노동의 함수로 정의된다. 즉 돈과 사람만 투입된다면 산출물은 기계적으로 나온다고 본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기술은 단지 부차적인 요소일 뿐이다. 그러나 동일한 양의 돈과 사람이 투입된다 하더라도 나라에 따라 또 회사에 따라 그 결과물은 확연하게 다르다. 그 원인에 대해 주목한 경제학자 그룹을 네오-슘페테리언들이라 부른다. 이들은 경제성장의 가장 중요한 요인의 하나로 기술의 변화를 지적한다. 요즘의 방송과 신문을 보면 온통 4·11 총선에 관심이 쏠려 있다. 신문지상은 온통 정치다. 식사자리에서건, 술자리에서건, 심지어 택시에서도 총선은 단연 으뜸 주제다. 눈이 오면 온 세상이 하얗게 뒤덮이듯 요즘 세상은 정치로 뒤덮여 있는 것 같다. 국가의 미래가 오로지 정치에 달려 있는 듯 정치 만능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정치만 잘되면 국민의 행복도, 삶의 수준도, 모든 일이 다 잘될 것 같은 환상에 빠진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정말 정치만 잘되면 우리의 삶의 질은 자연히 따라오는 부산물들일까? 그러면 그동안의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신화가 모두 훌륭한 정치 덕분이란 말인가?

어쩌면 그동안 우리나라가 해방 이후 60여 년 만에 세계 10대 경제대국에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소리 높여 외치는 정치와 권력투쟁의 결과라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혼신의 힘을 기울여 온 산업일꾼과 과학기술자, 그리고 높은 교육열과 근면한 우리 국민들의 공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난 200여 년간을 살펴보면 세계의 역사를 움직인 것은 과학기술이다. 콘트라티에프의 장주기이론(Long-wave theory) 등에서와 같이 1780-1840년의 섬유산업, 1840-1890년의 증기기관과 철도, 1890-1940년의 전력과 철강, 1940-1990년의 자동차와 합성소재, 1990년대의 전자공학과 컴퓨터 등 50년 주기로 등장한 혁신적 기술개발에 따라 크게 발전해 왔고 이는 경제발전과 삶의 질이 과학기술의 발전에 달려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한 나라의 경제적 부(富)는 과학기술 없이는 불가능하다. 19세기 세계를 주도했던 영국은 기술력에 의한 산업혁명의 성공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항공기와 인공위성의 개발, 닐 암스트롱에 의한 아폴로 유인 달탐사도 과학기술이 없이는 결코 달성할 수 없는 성과들이다. 2차 대전 패전 이후의 일본의 재등장도 결국은 기술력이다.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은 한 나라의 존망을 결정한다. 눈부신 문화를 자랑했던 잉카제국, 유구한 역사의 중국도 결국은 과학기술에 기반한 서구의 무력침공에 굴복당한 것이다. 2차 세계 대전에서의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 승리의 원동력 역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기초한 과학기술이다.

오랜 세월 동방의 조용한 나라였던 한국이 세계사의 주요 일원국이 된 것도 결국은 과학기술력의 발전에 기인한다. 이렇다 할 지하자원도 넓은 농토도 없는 우리나라에서 경제적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우수하고 근면한 인력과 기술이라고 하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 4·11 총선을 바라보는 과학기술계의 마음은 착잡하다. 바른과학기술사회실현을위한국민연합(과실련)의 성명서에 따르면 이번 총선의 4개 주요 정당의 후보자는 총 665명이나 이 중 500만 과학기술인을 대표하는 과학기술계 인사는 고작 16명으로 전체 후보자의 2.4%에 불과하다. 비록 비례대표 1번에 여성과학기술인을 추천한 정당도 있으나, 이는 상징적인 제스처에 불과할 뿐 전체 과학기술인에 대한 배려는 매우 미미하다.

우리나라의 미래는 과학기술에 있다. 과학기술인을 그저 관리의 대상으로 보거나 아직도 신고전 경제학파와 같이 경제성장의 부차적인 요소로 본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우수한 인력이 이공계를 선호하고, 이들의 참신한 아이디어가 벤처기업의 원동력이 되고, 나아가 새로운 신개척 상품과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우리나라가 지속 발전할 수 있는 터전을 구축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과학기술계 인사가 정치, 정부, 사회 문화의 요소요소에서 당당한 역할을 해 주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의 국정이 당리당략에 의해 좌우되지 말고 실사구시에 바탕을 둔 과학기술 중심의 국정운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미래는 과학기술에 있고, 과학기술이 곧 우리의 미래다.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오정연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