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유가' 허리띠 조이는 中企

대전지역 대덕산업단지내에 입주해 있는 한 중소기업 대표는 현재 경기 상황을 끝을 알 수 없는 긴 터널에 비유했다. 종착점도 모를 경제난이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소비 위축에 따른 매출 급감, 환율 불안, 인재 확보 어려움 등 중소기업을 전방위로 압박하는 불안요소가 즐비한 상황이다. 여기에 기름 값까지 요동치며 중소기업 발목을 붙잡고 있다. 이 같은 부담 요인이 지속되고 있어 중소기업들은 현재 상황을 '마른 수건 짜내기'에 비유하기도 한다. 고유가시대를 맞아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묘책을 쏟아내고 있는 실태를 통해 지역 중소기업의 현실을 들여다 봤다.

△자고 일어나면 오르는 기름값=우리나라는 세계 4위 석유 원유 수입국이자 3위 석유제품 수출국으로 기름값 변동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태생적 약점을 안고 있다. 국내 경제사정도 중요하지만 안방 바깥 상황에 따라 휘둘리기 쉽다는 얘기다.

유가상승 곡선을 살펴 보면 두바이유 가격은 1월 평균 110달러, 2월 116달러, 이달 들어 120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국내 석유시장은 유독 두바이유 의존도가 높다. 두바이유 값이 뛸수록 소비와 투자는 줄어들고 이는 자연스럽게 경제 성장 둔화로 연결되는 것이다. 최근 이란 핵개발 새태로 인한 지리적 위험성 등 다양한 국제 정치 문제가 유가 상승을 부추기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대전지역 기름값은 40일 간 오름세를 지속하고 있다. 28일 기준 대전지역 ℓ당 보통 휘발유 평균 값은 2041.94원. 전날 2040.97원에 견줘 0.97원 오른 수치다.

석유제품 가격정보 사이트 오피넷에 지난달 17일 ℓ당 보통 휘발유값 1991.56원 이후 현재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상승했다. 심리적 마지노선 2000원대 테이프를 끊은 것도 지난달 23일(2000.25원)이다.

대기업의 경우 위기 상황을 대비한 계획인 '컨티전시 플랜(contigency plan)'을 마련해 위험부담을 최대한 덜 수 있지만 중소규모 기업은 마땅한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보니 푼돈이라도 아껴보려는 눈물겨운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물류비 부담이 크다. 물류업계가 고유가 부담을 이유로 투쟁을 선언하면 또 다른 악재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의 한 중소기업 대표는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물류비 인상분을 반영할 수 밖에 없다"며 "지난해에 비해 최대 20% 가량 물류비가 올랐다"고 털어놨다.

지역의 중소기업 대부분은 공급단가에 비해 생산단가가 높아지며 채산성 악화를 겪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휘발유의 경우 생산업종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기름값이 오르면 물류비, 난방비 등 각종 부대 비용이 연쇄반응을 보이며 결국에는 기업의 목을 조이는 결과를 낳고 있다.

△지역 기업 '마른 수건 짜내는 심정'=지역 기업들은 이미 지난해부터 최우선 경영 방침으로 에너지 절약을 내걸고 새나가는 돈 막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작업장 점등 스위치를 늘려 조명 조정을 세분화해 전기세를 줄이고 휘발유 차량을 경유 차량으로 교체하는 등 다양한 묘안을 짜내고 있다. 또 재활용이 가능한 제품개발에 구슬땀을 쏟아 독창적인 기술력으로 경제난을 정면돌파 하는 기업도 나타나고 있다.

오토바이 경주복 제조업체 '한일'은 생산 공장라인의 전열기구 스위치를 대폭 늘리고 구간별로 점등을 할 수 있게 올해 공사를 마무리했다. 야간 작업시 필요 없는 부분까지 점등되는 형광등 수를 줄여 전기세 절약에 나선 것이다. 현재 한일은 라인별로 조명을 조정할 수 있어 공사 이전에 비해 전기세를 약 10% 가량 줄였다.

휴대폰 부품 생산업체 '프렉코'는 올해 들어 영업용 가솔린 차량을 디젤 차량으로 교체했다. 주행거리가 많은 만큼 유가 부담이 컸는데 가솔린 엔진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비가 뛰어난 디젤 엔진을 선택함으로써 비용 절감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프렉코 관계자는 "차량 한 대당 평균 약 5% 안팎의 비용을 아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출퇴근 버스를 운행해 직원들의 유류 부담을 덜고 있으며 한 차량으로 함께 출·퇴근하는 카풀(car pool)권장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

목재 하반 판매업체 '동방합판'도 같은 이유로 최근 소형차를 한 대 마련해 업무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바이오 실험기기 생산업체 '(주)씨애치씨랩(CHC LAB)'은 생활 속 작은 실천을 실행하고 있다. 사내에 종이컵을 없애고 전 직원이 개인 컵을 사용하고 있다. 특히 겨울철에는 내복입기 운동을 자체적으로 벌여 난방비를 아껴 왔다.

디젤 기관차·선박용 내연기관 부품 생산업체 '삼영기계'는 전 직원 이메일로 에너지 절약법을 안내해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각종 에너지 절약 실천법과 더불어 기술력 개발로 경제난을 정면 돌파 하는 중소기업도 있다.

창호전문기업 '성광창호'는 재활용이 가능한 재료로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술을 특허 출원 준비에 있다. 창호 내부에 쓰이는 재료를 재생 가능한 물질로 개발함으로써 가격 경쟁력과 친환경 생산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복안이다.

대덕산업단지내 한 업체 관계자는 "아무리 에너지 절약에 나선다고 해도 오르는 기름 값을 감당할 수 없는 실정"이라며 "유가 인상 추세가 계속된다면 지역 기업 경쟁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정부의 유류세 인하 등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태영 기자 why@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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