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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아는 결혼하지 않은 남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가리킨다. 과거 사생아는 온갖 멸시와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사회의 그늘에서 죽어지내야 했다. 출세를 하는데 제약이 뒤따랐고 재산도 정당하게 나누어 가질 수 없었다.

조선시대는 원칙적으로 일부일처제였지만 첩에게서 얻은 자식을 서얼로 분류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신분에 따라 제한적으로 관직에 진출할 수 있었다. 불륜이나 겁탈도 없지 않았을 터이지만 양반댁에서 어떻게든 소문이 나지 않게 처리(?)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서얼은 그래도 혼인관계에 근접한 사생아로 보아야 할 것이다.

조선시대 폭풍처럼 살다간 유자광(?-1512)은 서얼출신이다. 유자광에 서자콤플렉스가 없었다면 조선의 역사는 어떻게 달라지고 오늘날 우리 현대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생각하면 흥미롭다. 같은 서자인 허준(1546-1615)은 일찌감치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고 한의학에 몰두해 명의의 칭호를 얻었다. 서자로는 분에 넘치게 출세했고 `동의보감`은 최고 의서로 인정받고 있다. 유자광이 자신의 콤플렉스를 증오와 반목으로 표출했다면 허준은 자신의 핸디캡을 분발의 자극제로 승화시킨 셈이다.

허균의 홍길동전은 호부호형을 하지 못하는 서얼 주인공을 통해 자신의 울분과 당시 사회모순을 비판했다. 허균은 워낙 총명하고 학문이 뛰어나 관직에 오르지만 주변의 시기와 모함으로 굴곡진 삶을 살다가 결국 뜻을 펴지 못하고 운명을 달리했다. 허균의 부친이 본부인이 죽은 후 재혼해 허균을 얻었으므로 서자라고 못 박는 데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일말의 자격지심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허균은 `유재론`에서 `하늘이 인재를 태어나게 함은 한 시대의 쓰임을 위한 것인데 인재를 버리는 것은 하늘을 거역하는 것`이라며 서얼 또는 어머니가 개가했다고 해서 인재를 버리는 세태를 개탄했다.

반상이 엄격했던 조선시대에서도 뜻 있는 인사는 서얼 철폐를 끊임없이 주장했다.

명종 초기인 1550년대 양인 첩의 자손은 손자부터 과거에 응시토록 하되 유학(幼學)이라 부르지 않고 합격문서에 서얼출신임을 밝혔다. 16세기 말에는 이이와 최명길 등이 서얼 허통(許通)을 주장했으나 관철되지 못했다. 1777년 정조는 서얼이 관직에 오를 수 있는 길을 넓힌 `정유절목`을 발표하고 규장각에 검서관(檢書官) 제도를 두어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등의 유능한 서얼을 받아들였다. 서얼은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 폐지된 이후 민법상 보완을 거쳐 지위도 많이 개선됐다.

사생아 차별은 우리나라보다 서양이 더욱 심했다. 유럽의 중세 기독교사회에서 사생아는 `부정(不貞)의 열매`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았다. 20세기 들어 러시아연방이 사생아를 국가가 보호하고 차별을 철폐하는 정책을 도입하면서 유럽의 시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주레 피오릴로의 저서 `사생아, 그 위대한 반전의 역사`에는 사생아로 태어나 세계를 휘어잡은 역사적 인물을 소개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엘리자베스 1세, 제임스 스콧, 알렉산더 해밀턴, 아라비아의 로렌스, 빌리 홀리데이, 에바 페론, 피델 카스트로 등이 등장한다.

책에는 거론이 되지 않았지만 스티브 잡스, 오프라 윈프리, 마릴린 먼로도 아픈 출생의 상처를 안고 있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잡스는 195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생모 부모는 생부가 시리아인이라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했고 결국 생모는 미혼모로 잡스를 낳아 입양시켰다. 잡스는 성장하면서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스마트폰이라는 문명사의 획기적 물건을 세상에 내놓았다. 사생아라는 꼬리표가 그의 활동을 가로막는 일은 없었다.

잡스의 태생적 상처가 천재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도 중세기독교사회에 태어났다면 재능을 펼치는 데 커다란 어려움이 뒤따랐을 것이다.

중세보다는 근현대 들어 두각을 나타내는 사생아가 많은 이유는 사회 인식의 변화와 제도적인 차별철폐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떨쳐버릴 수 없는 핸디캡을 갖는다는 건 불행한 일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오기 힘든 요즘 시대를 신골품사회라고도 부른다. 빈부격차와 소수에 의한 부의 편중이 심화되고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육두품`에 오르는 신분상승의 희망마저 품을 수 없게 한다면 그 나라의 미래는 밝지 않다.

경제민주화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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