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포럼- 정윤형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책임연구원

2011년 3월 11일, 금요일 오후 2시 46분. 약간 쌀쌀하지만 노곤한 오후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는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오랫동안 드리울 크고 어두운 그림자가 덮친 것이다.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의 4개 호기 중 3개가 대지진으로 자동 정지되었다. 비상 디젤발전기가 지진으로 정지된 원자로를 냉각시키기 위해 자동적으로 동작했지만 곧 밀려든 지진해일의 엄청난 바닷물에 멈추어 원전 내·외부의 모든 전원이 상실되는 대형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일본 원전의 사고 소식은 우리나라에 저녁 뉴스를 통해 알려졌다. 언론들은 시간마다 속보를 전했고, 국민들은 수소 폭발로 발전소 건물 천장이 폭발하는 현장을 생생하게 보게 된다. 이렇게 일본의 원전 사고는 우리의 일상에 파고들었으며 수개월 동안 매일 후쿠시마와 방사능 뉴스로 아침을 열고 밤을 닫았다.

일본 원전의 사고가 전개되는 동안 국민들은 어떻게 지냈을까? 국민들은 사고의 생중계를 보면서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유출된 방사능으로 건강은 물론 먹거리까지 위협받고, 외국에 있는 가족은 안전할지, 또 국내에 가동 중인 원전의 안전성 등으로 불안의 영역은 커져 갔다.

이에 정부와 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은 국내 전문가를 총망라하여 모든 가동 원전에 대해 안전성을 점검하여 지진과 지진해일로 인한 중대사고의 예방, 완화, 대응에 이르는 모든 상황에 대비하는 50개 안전개선대책을 도출하여 원전 안전성을 실질적으로 강화하도록 조치하고 이를 원전지역 주민들에게 설명하였다. 한편 원자력안전기술원은 사고 발생 다음날부터 3교대로 비상 상황반을 구성하여 24시간 감시체제로 6개월 이상 사태 변화를 주시하며 대처하였고, 또한 주요 공항과 항만 입국자의 방사능 보호조치를 수행하였다.

아울러 원자력안전기술원은 국민의 궁금증에 답하는 전용 전화선을 2대 개설하였는데 사고 발생 두 달 동안 총 8696통의 문의가 폭주하였다. 또 홈페이지를 통한 질문에도 답변하였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임신부 및 유아에의 방사선 영향, 사고로 인한 국내 방사능 오염 정도, 일본 거주 교민과 유학생, 방문객의 대처방안, 일본 수입 식품이나 공산품의 안전성 등의 궁금증을 갖고 있었다. 또한 일본 정부를 믿을 수 없으니 시료를 채집하여 KINS로 보내면 측정해서 알려 달라는 재일교포, 사고 지역 상공을 운항해도 되는가 묻는 항공기 조종사, 중학생 아들이 방사능 오염 때문에 학교에 가지 않으려 하니 학교 가도 된다고 아들에게 얘기해 달라는 학부모, 구입한 중고 방사능 측정기의 사용법을 알려 달라는 횟집 주인 등 접수된 내용에서 국민의 다양한 입장과 고민을 확인하게 되었다. 한편 모든 언론의 폭발적 취재 요청과 인터뷰에도 전 직원이 힘을 합쳐 대응하여 우리 국민의 걱정에 동참했다.

공포와 연민은 전혀 다른 감정인 것 같지만 실은 매우 유사한 감정이다. 그리스 원어로 풀어 보면 `공포`는 `경악`에 가까운 강렬한 감정이고, `연민`은 파멸에 처한 남의 처지를 곧 자신의 처지로 느끼는 감정이입의 상태를 의미한다고 한다. 즉, 상대방의 불행이 내게도 일어날 수 있다고 느끼면 공포가 유발되지만, 내게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믿을 경우 연민이 생기게 된다.

우리 국민은 원전 사고로 발생한 일본인들의 대피행렬이나 대피시설에서의 모습을 보며 연민을 느꼈다. 물과 담요와 같은 기본적인 생필품조차 갖추지 못한 피난소에서의 이재민 생활을 TV로 보면서 동정심에 지원성금을 모으기도 했다. 반면에 일본 원전에서 유출된 방사능이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독일 기상청의 예측 또 방사능비가 내린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연민은 공포로 바뀌기도 하였다. 이런 일이 몇 달간 지속되면서 국민들은 침착하고 담담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원전 사고 1주기를 맞아 일본인들은 사고 시각에 함께 묵념하며 의미를 되새겼다. 후쿠시마 원전의 사고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고등급 중 가장 심각한 7등급에 해당된다. 이 사고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오염된 액체방사성폐기물의 처리, 초등학교를 비롯한 오염된 공간의 제염 등 산적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는 원전 21기가 가동되는 현실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일본 사례를 교훈 삼아 정부와 규제기관은 장단기 안전개선대책의 이행 및 강화된 안전기준을 수립·적용하고, 원전 관계자는 절차서 수립 및 교육훈련을 통해 사고대응능력을 높이고 있다. 이제 남은 과제는 국민에게 인정받을 수 있도록 국민의 눈높이에서 투명하게 원전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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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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