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목원대 미술대학 회화과 교수

대학 교정에 새내기 학생들의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활기찬 발걸음은 봄이 왔음을 확인시켜 준다. 새내기 대학생들의 활기찬 발걸음을 보면서 불현듯 대학은 왜 4년제 과정으로 정해졌는지 의문이 들었다. 이에 대한 실마리를 나름의 추론으로 풀어볼까 한다.

대학은 우리 고유의 교육제도가 아니라 서구에서 발달된 근대적 교육제도다. 400년이 넘은 장구한 역사를 지닌 서구 대학 역사에 비해 우리나라 대학은 채 100년도 되지 않는 일천한 역사를 갖고 있다.

근대적 교육시스템을 발전시킨 서구인들은 대학을 왜 4년제로 정했을까. 흔히 인간의 발달과정을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로 압축, 분류하여 나타낸다. 우연의 일치일까. 대학의 편제 역시 4단계로 나뉘어 있다. 단계별로 대학 1학년생을 새내기(freshman), 2학년을 서퍼모어(sophomore), 3학년을 주니어(junior), 4학년을 시니어(senior)로 분류, 지칭한다. 공통적으로 각 과정을 4단계로 나누어 축약, 표현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이를 헤아려보면 대학 4년제 편제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지 않을까.

초, 중, 고 시절과 판이하게 다른 대학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1학년을 신선하고도 풋풋한 뉘앙스를 풍기는 우리말 `새내기`로 번역해도 틀림이 없는 `프레시맨(freshman)`으로 부른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고 적응하는 단계이어서 프레시맨으로 지칭한 것이다. 소년기(少年期)!

그런데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것은 대학 2년생은 다소 생소한 어감의 `서퍼모어(sophomore)`로 칭한다는 점이다. 그리스어를 어원으로 하는 서퍼모어는 현명하다는 뜻을 지닌 `sophos`와 바보 같다는 뜻의 `more`로 이루어진 합성어이다. 새내기 시절의 대학 1학년 과정을 거쳐 본격적으로 전공분야의 학문을 접하면서 무언가 알듯 말듯, 어중간한 대학 2년생의 현실을 예리하게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청년기(靑年期)!

대학 3년생은 사전적으로 나이 어린, 신참 직장인을 일컫는 데 쓰이는 `주니어(junior)`로 지칭한다. 나름대로 전공분야의 학습에 정진하였지만 아직은 완성도가 미흡해 보인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칭하지 않았을까 추정해본다. 장년기(壯年期)!

상대적으로 대학 4년생은 어른 또는 고참의 의미로 풀이되는 `시니어(senior)`로 칭한다. 학문적으로 또 인격적으로 성숙됐다는 것을 인정하는 의미에서 그렇게 부르지 않았을까. 노년기(老年期)!

한마디로 대학 수학과정을 인간의 발달단계와 비유하여 4단계로 분류, 압축시켜 표현한 것이다. 비약하자면 인생의 전 과정을 결코 길지 않은 4년간의 짧은 기간으로 농축시켜 체험케 한 것이다. 이렇게 4년간의 단기간에 인생과정을 함축하여 체험케 한 것은 역설적으로 대학과정의 중요성을 일깨운 것에 다름 아니다.

대학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장장 12년을 희생시킨 보상심리에, 또 입시지옥이라는 험난한 곳에서 풀려 나온 해방감에 우왕좌왕하며 허송세월하는 학생이 종종 눈에 띈다. 대학생활은 맡은 바 모든 일을 학생 스스로 알아서 판단하고 처리해야 하는 자율적인 세계다. 그러나 가끔 스스로 지켜야 할 법칙, 즉 자율(自律)을 곡해하여 그릇되게 방종(放縱)한 대학생활을 하는 학생이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인생의 최고 황금기를 뚜렷한 목표의식 없이 갈팡질팡하는 학생들에게 먼저 최소한 대학은 왜 4년제일까를 생각해보라 권한다. 원기왕성하고 생체리듬이 최고조에 도달한 10대 후반 또는 20대 초반에 경험하는 대학생활이 인생을 결정 짓는 분수령이 될 것임은 틀림없다. 따라서 대학생활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철저하고도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특히 대학 새내기 학생들에게 하루라도 빨리 확고한 비전을 갖고 목표를 세워 대학생활에 임할 것을 간곡히 부탁하고자 한다.

교육의 목적은 크게 국가 장래 발전을 위한 국가적 목적,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문화적 목적, 개개인의 꿈을 실현코자 하는 개인적 목적에 있다 한다. 더불어 교육의 지고한 목적은 순수한 학문을 탐구하며 자기계발에 힘써 `가치 있는 삶`을 도모하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대학교육의 궁극 목적이 취업에 있는 것처럼 몰아세우며 교육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은 아닌지 교육당국 정책에 진지한 성찰이 절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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