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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말한다

2012-03-20기사 편집 2012-03-19 21:4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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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아 변호사

"시체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말한다."

미드 '바디 오브 프루프'의 극 중 검시관으로서 변사체로 발견된 모든 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검시를 통해 밝히는 역할을 맡고 있는 여주인공의 대사로서 그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이 한마디에 담고 있다.

그 사람이 무엇을 먹고 무슨 운동을 했으며, 평소에 앓았던 지병은 무엇이며 그가 본인의 삶을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까지도 이제 우리는 검시를 통해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옛말은 이제 이렇게 바뀌어야 맞을 것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다만 온몸으로 표현할 뿐이다. 누군가 그것을 알아주기만을 바라며.'

그렇다면 이렇게 억울한 죽음에 대한 마지막 변론이 될 수도 있는 변사체에 대한 우리나라의 검시 절차는 어떠한가?

우리는 외국의 범죄드라마를 통해 흔히 본, 변사사건에 CSI(Crime Scene Investigation)와 함께 검시관이 출동하여 사체를 살피고 타살 여부를 유추하고 사체를 보존하여 추후에 부검을 통해 확보할 수 있는 모든 증거를 수집하는 그런 광경을 우리나라의 제도에 대입하고 있지는 않은가?

일명 초동수사의 가장 강력한 핵심이 될 수도 있는 사체를 원형 그대로 보존하여 그 자리에서 필요한 증거를 수집하는 절차는 불행히도 우리나라의 경우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가 사체를 원형 그대로 보존해 사망의 원인을 알아내는 영미의법의관제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체에 관한 비전문가라 할 수 있는 검사가 검시의 책임을 지는 겸임검시제도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검사가 법의관의 역할을 담당하여 타살 의혹이 있으면 부검을 의뢰하는 절차로서 이마저도 변사자 전체 부검률이 5% 미만에 머물고 있다.

이러한 검시에 대한 제도적 허점은 얼마 전 일어난 일명 '시체 없는 살인'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시체 없는 살인'은 한 여인이 노숙자 여인을 살해하고 그 여인의 주민등록증을 사용하여 외국으로 출국하려다 적발된 일로 이 여인은 노숙자 여인에게 독극물이 든 음료수를 마시게 한 후 사망하고 수 분이 지난 후 병원 응급실로 데리고 가 아는 지인이고 평소에 심장이 좋지 않았다는 거짓 진술을 하였고 가족을 위장한 사람을 시켜 시신을 화장시켜 증거를 완벽하게 인멸하였다.

이에 그 여인의 살해 의혹은 짙으나 결정적인 증거인 사체가 사라졌으므로 모든 것이 정황증거로만 남게 된 것이다.

위 사건은 대다수의 사람에게 시체를 이렇게 손쉽게 처리할 수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안겨 준 일로 우리나라의 경우 변사자나 사고사의 경우 비전문가의 검안만으로 시체를 매장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검시의 대상이 되는 일명 '죽음의 종류'에 대한 기준이 없는 것이다.

현 법제도가 지향하는 핵심은 인간의 소중한 것, 그중에서도 으뜸인 생명을 지키는 일일 것이다.

억울하게 사라지는 생명이 없도록 보호해야 하는 것이며,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는 그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이면에 숨겨진 것들을 파헤쳐 그 누구의 죽음도 허술하게 처리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 현 법제도가 해야 할 일인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검시가 있을 것이다. 검시를 통해 그 사람의 죽음과 사체가 말하는 것을 면밀히 조사하여 그 사람의 인권이 범죄에 의해 침해를 받았는지 아닌지를 판가름하여 인간을 보호하는 일, 이 중요한 일을 좀 더 공명하고 정확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변사자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검시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은 제도적으로 검시의 대상을 좀 더 면밀히 규정해 위의 사건처럼 사건을 은폐하는 목적으로 이뤄지는 매장 또는 화장을 막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며, 현장에서 이뤄지는 검안을 확대하여 좀 더 명확한 증거를 수집해야 갈수록 지능화되어 가고 있는 범죄에 대항할 힘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시체는 그 사람이 남기고 간,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다. 그 사람이 최후까지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는 것이 현 법제도가 그 사람의 인권을 위해 필히 수행해야 할 임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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