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아 변호사

"시체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말한다."

미드 `바디 오브 프루프`의 극 중 검시관으로서 변사체로 발견된 모든 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검시를 통해 밝히는 역할을 맡고 있는 여주인공의 대사로서 그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이 한마디에 담고 있다.

그 사람이 무엇을 먹고 무슨 운동을 했으며, 평소에 앓았던 지병은 무엇이며 그가 본인의 삶을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까지도 이제 우리는 검시를 통해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옛말은 이제 이렇게 바뀌어야 맞을 것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다만 온몸으로 표현할 뿐이다. 누군가 그것을 알아주기만을 바라며.`

그렇다면 이렇게 억울한 죽음에 대한 마지막 변론이 될 수도 있는 변사체에 대한 우리나라의 검시 절차는 어떠한가?

우리는 외국의 범죄드라마를 통해 흔히 본, 변사사건에 CSI(Crime Scene Investigation)와 함께 검시관이 출동하여 사체를 살피고 타살 여부를 유추하고 사체를 보존하여 추후에 부검을 통해 확보할 수 있는 모든 증거를 수집하는 그런 광경을 우리나라의 제도에 대입하고 있지는 않은가?

일명 초동수사의 가장 강력한 핵심이 될 수도 있는 사체를 원형 그대로 보존하여 그 자리에서 필요한 증거를 수집하는 절차는 불행히도 우리나라의 경우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가 사체를 원형 그대로 보존해 사망의 원인을 알아내는 영미의법의관제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체에 관한 비전문가라 할 수 있는 검사가 검시의 책임을 지는 겸임검시제도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검사가 법의관의 역할을 담당하여 타살 의혹이 있으면 부검을 의뢰하는 절차로서 이마저도 변사자 전체 부검률이 5% 미만에 머물고 있다.

이러한 검시에 대한 제도적 허점은 얼마 전 일어난 일명 `시체 없는 살인`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시체 없는 살인`은 한 여인이 노숙자 여인을 살해하고 그 여인의 주민등록증을 사용하여 외국으로 출국하려다 적발된 일로 이 여인은 노숙자 여인에게 독극물이 든 음료수를 마시게 한 후 사망하고 수 분이 지난 후 병원 응급실로 데리고 가 아는 지인이고 평소에 심장이 좋지 않았다는 거짓 진술을 하였고 가족을 위장한 사람을 시켜 시신을 화장시켜 증거를 완벽하게 인멸하였다.

이에 그 여인의 살해 의혹은 짙으나 결정적인 증거인 사체가 사라졌으므로 모든 것이 정황증거로만 남게 된 것이다.

위 사건은 대다수의 사람에게 시체를 이렇게 손쉽게 처리할 수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안겨 준 일로 우리나라의 경우 변사자나 사고사의 경우 비전문가의 검안만으로 시체를 매장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검시의 대상이 되는 일명 `죽음의 종류`에 대한 기준이 없는 것이다.

현 법제도가 지향하는 핵심은 인간의 소중한 것, 그중에서도 으뜸인 생명을 지키는 일일 것이다.

억울하게 사라지는 생명이 없도록 보호해야 하는 것이며,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는 그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이면에 숨겨진 것들을 파헤쳐 그 누구의 죽음도 허술하게 처리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 현 법제도가 해야 할 일인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검시가 있을 것이다. 검시를 통해 그 사람의 죽음과 사체가 말하는 것을 면밀히 조사하여 그 사람의 인권이 범죄에 의해 침해를 받았는지 아닌지를 판가름하여 인간을 보호하는 일, 이 중요한 일을 좀 더 공명하고 정확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변사자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검시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은 제도적으로 검시의 대상을 좀 더 면밀히 규정해 위의 사건처럼 사건을 은폐하는 목적으로 이뤄지는 매장 또는 화장을 막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며, 현장에서 이뤄지는 검안을 확대하여 좀 더 명확한 증거를 수집해야 갈수록 지능화되어 가고 있는 범죄에 대항할 힘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시체는 그 사람이 남기고 간,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다. 그 사람이 최후까지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는 것이 현 법제도가 그 사람의 인권을 위해 필히 수행해야 할 임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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