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욕망·부패의 카르텔 폭로

드라마 `타짜` 작가·한국방송작가협회 정회원

2011년, 문단과 영화계를 들끊게 했던 동명의 소설과 영화 한편이 있었다. 개인의 삶에 천착할 수 밖에 없는 열악한 사회구조와 환경 덕에 남의 문제를 들여다보는데 인색했던 대중은 단 한편의 책과 영화를 통해 분노의 감정을 공유했고 또한 부조리한 결정을 내렸던 위정자들에게 그들의 결정을 번복하고 개선해 나가도록 실력행사까지 하게 만들었다. 그 동명의 원작과 영화는 바로 `도가니`였다.

소설 `도가니`는 현실의 부조리를 파헤치는 통찰력, 불합리와 모순에 맞서는 정직성, 동시대 사람들과 호흡하는 감수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작가 공지영이 2년 만에 펴낸 장편소설이다. 원작은 광주의 한 장애인학교에서 있었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흥미진진하게 다루고 있다.

아내의 주선으로 남쪽 도시 무진에 있는 청각장애인학교 `자애학원`의 기간제교사 자리를 얻어 내려가게 된 강인호. 부임 첫날 우연히 듣게 된 여자화장실의 비명소리로 점차 거대한 폭력의 실체를 알아가게 된다. 장애아들에 대한 구타와 성폭행이 빈번하게 벌어지는 학교. 강인호는 대학 선배이자 무진인권운동센터 간사인 서유진, 최요한 목사, 피해 학생의 어머니 등과 함께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고 세상에 알리려 한다. 하지만 자애학원과 결탁한 교육청, 경찰서, 교회 등 무진의 기득권세력들은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비열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며 주인공을 시시각각 압박해 들어온다.

영화와 원작의 설정은 일면 대동소이한데가 있다. 한편엔 가혹한 상황에 처한 피해자와 그들의 편에 선 선량한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한편엔 이를 덮으려는 부패하고 잔혹한 욕망의 카르텔이 있다. 몇 가지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각각의 인물들에 대한 전사와 그들이 사건을 대하는 태도다.

첫째로 원작와 영화 속에서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는 민수의 태도다. 두 작품 모두에서 민수는 지적 장애를 가진 자신의 부모가 자신과 동생을 성폭행하고 동생을 죽음으로 몰고 간 박보현 선생과 단 돈 몇푼에 합의한 사실을 알고 절망한다. 그러나 소설 속 민수는 부조리한 현실에 그저 순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영화 속 민수는 성폭력 가해자인 박보현과 대적해직접적인 복수를 결행한다. 둘째로 주인공 강인호의 스캔들이다. 원작의 큰 스토리 줄기 중 하나는 강인호의 과거에 관한 것이다. 과거 강인호는 전교조 활동 중 제자를 성폭행하고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오해를 뒤집어쓴 인물이다. 그는 학교와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끊임없이 좌파교사, 불순세력 교사로 매도당한다. 영화에서 강인호의 과거가 다뤄지지 않은 이유가 현실의 어떤 지점과 맞닿아 있다는 점을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아 보인다.

신예 황동혁 감독은 영화 `도가니`를 통해 세상을 바꾸겠다는 포부를 들어내지 않는다. 대신 그는 관객들에게 사회적 약자인 자애학원의 학생들이 겪는 불의와 폭력, 부조리들을 가감없이 적시해가며 나와 우리의 오늘을 다시 한번 환기시키길 원할 뿐이다. 혹자는 현실의 절반도 밝히지 못한 원작의 한계점에서 조금 더 나아가지 못한 것을, 혹자는 감독의 욕심을 위해 너무 잔인한 카메라 앵글을 사용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가했지만 이야기의 진정성만큼은 이런 비판들을 무시해도 좋을 만큼 섬세하고 배려가 넘쳤다.

소설과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사라진지 오래되 보인다. 쇼비즈니스만을 위한 영화와 미세하게 위장된 온갖 상업적 기술들의 표본으로 전락한 얄팍한 내면의 소설류들이 우리들을 지배할 즈음, 이런 영화와 소설을 반가움을 넘어선 기쁨으로 환대하고자 하는 나의 마음은 단지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부패의 카르텔 속에서 힘없이 살아가야만 하는 나와 이웃들에게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나를 바꾸지 못하게 하려고 싸우는 거다`라고 항변하는 주인공의 말은 변화하는 시대의 정지선 앞에 멈춰선 오늘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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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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