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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위선

2012-03-17기사 편집 2012-03-16 21: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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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광장- 김준호 대전대 경제학과 교수

반정부 데모가 끊이지 않던 70년대에도 한눈팔지 않고 공부만 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주로 판검사나 고위공무원이 되려는 고시생들이었다. 일반학생들은 이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이들은 개인의 영달과 출세를 위해 시대적 소명을 저버린 이기적인 인간들로 간주되었다. 고시생들 가운데도 데모에 동참하지 않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어쩌다 같이 술을 마실 때는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데도 공연히 미안해했다. 그리고는 술에 취해 도서관으로 올라가면서 장차 법관이 돼서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약자들의 인권과 이익을 위해 싸우겠다는 취지의 다짐을 했다.

고시생들보다 뒤늦게 도서관에 합류하는 기자 지망생들은 시험 준비를 하면서도 틈만 나면 '비판정신'과 '선비정신'을 들먹였다. 공직에 나가려는 학생들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기업체 쪽을 알아보거나 개인 사업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어떻게든 자신의 진로를 국가발전에 결부시키려고 했다. 그때는 재벌마저도 조국근대화와 민족중흥을 위해 존재했었다. 세뇌된 애국주의, 벗어나려고 하면서도 국민 모두가 물들어 있던 전체주의가 작용한 탓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전후좌우를 알 만한 연배의 교수들도 우리의 허장성세를 조장했다. '인생감의기(人生感意氣)'니 하는 대담한 말들을 그때 들었다.

우리도 알고 있었다. 우리의 다짐과 맹세의 대부분이 위선이라는 것을. 진실은 단순했다. 한미한 집안 출신의 청년이 자신의 입신양명과 가문의 영광을 위해 '시대적 소명'을 외면하고 도서관에서 밤을 샜던 것이다. 소명에 충실하여 데모를 주도한 학생들 중에도 그 나이에 이미 정치적 야심과 술수를 익히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기자 지망생들도 언론의 자유에 대한 열망보다는 공명심이 더 컸다. 순수하기로 말하면 사회적 엘리트가 되고자 했던 이들보다는 평범한 학생들이었다. 경찰에서 분류할 때 시위의 단순참가자에 해당되는 학생들, 욱하는 마음에 휩쓸려 짱돌을 던졌다가 카메라에 찍혀서 곤욕을 당했던 학생들이 그래도 덜 위선적이었다.

몇 년 전부터 그들이 은퇴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치세(治世)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4·19세대와 6·3세대를 변절자들이라고 비판했지만 그보다 더 심한 비난을 80년대 후배들에게 들어야 했다. 졸업한 후에도 민주화운동을 계속했던 인사는 보수 여당의 국회의원을 하면서 각종 구설을 만들더니 새로 생긴 보수 정당으로 옮겨갔다. 방송사 기자가 된 인사는 든든한 줄을 잡아 사장이 되고는 진실보도를 가로막는다는 이유로 퇴진을 요구받고 있다. 고생 끝에 검사가 된 인사는 중앙으로 진출하지 못하자 일찌감치 변호사 개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 맹세가 진실할수록 일찍 옷을 벗었다.

그런데도 가끔 그때의 위선이 그리운 것은 그 위선적인 생각과 언사들이 우리의 젊은 날을 어떤 알 수 없는 열기로 들뜨게 했기 때문이다. 자유를 위해, 민주주의를 위해, 조국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다는 로맨틱한 열정과 비장한 사명감이 위선으로부터 나왔다. 위선은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안티테제로서 우리를 변증법적으로 성장시켰다. 위선은 어떤 행위의 명분과 거기에 합당한 도덕과 마땅히 갖추어야 할 태도를 지시해 준다. 위선은 당위와 현실, 이념과 욕망 사이의 인간적 고뇌의 산물이다.

위선은 최소한 정도(正道)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는 것, 수오지심(羞惡之心)과 염치가 남아 있다는 것을 반증해 준다. 위선을 통해서 우리는 문명인으로서의 품성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위선은, 사회에 진출해서 기성세대가 되고 작지만 자기 영역을 호령하게 되었을 때 거나하게 취해서 귀가하는 중년의 어깨를 툭 치며 '당신 이렇게 살아도 돼?' 하는 물음을 던지는 그런 것이었다.

그 위선이 사라지고 있다. 언론인이 되겠다는 젊은이들은 빈말로도 직필정론을 들먹이지 않는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술김에라도 국리민복(國利民福)을 떠들지 않는다. 판검사는 정의를 말하지 않고 의사는 인술(仁術)을 말하지 않는다. 그들이 보여주는 행태로만 보면 과연 한 번이라도 법과 의술의 참된 지향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판검사라는 자리가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쟁취한 전리품이기 이전에 국민의 세금으로 유지되는 공직이라는 점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의사에게 의료기술 이전에 타인의 고통에 동참하는 고양된 인격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아는지 실로 의심스럽다.

위선이 사라지면서 자신에 대한 성찰도, 공직자로서의 인간적인 번민도, 최소한의 도덕심도 사라지고 있다. 공직은 순수하게 사적인 동기로 점거되고 있으며 사적인 욕구들은 은폐되지도 포장되지도 않은 채 자신을 훤히 드러내고 있다. 다만 부와 권력에 골몰할 뿐 명분에 구애받지 않는다. 노골적이고, 적나라하고, 거침없다. 그래, 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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