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포럼- 한순흥 KAIST 해양시스템학과 교수

벤처기업과 품질관리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단어들로 보인다. 벤처기업이라 하면 구글, 페이스북, 애플과 같은 젊고, 창의적이고, 실리콘밸리를 떠올리게 하고, 청바지 입고 근무하는 자유분방하고 창조적이고, 때로는 외골수 고집불통으로 보이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로 상징된다. 벤처기업의 신화들은 파괴적인 새로운 아이디어와 대학교 캠퍼스와 같은 자유로운 근무환경에서 만들어진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반면에 품질관리는 엄격함과 빈틈없음을 주제로 하는 주차 단속반, 생활지도교사나 납품검사관, 엄격한 군대의 훈련 조교, FM대로 원칙과 규정에 맞게 행동하는 고지식한 사람을 의미하고, 꼼꼼하고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엄격함으로 무장해야 하는 업무로 이해된다.

PPM이란 원래 화학분야에서 쓰이는 `Parts Per Million`에서 유래된 단위로, 공해를 표시하는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표시하는 데 사용된다. 100 PPM 품질혁신운동은 불량률을 제품 100만 개 중 100개(0.01%) 이하로 낮추기 위해 조직구성원 전원이 참여하는 품질개선운동이다. 이와 같이 품질관리 업무는 창조적이고 자유분방한 벤처 마인드를 꺾어 놓는 분위기로 무장하고 있으므로, 벤처와 품질관리는 서로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기업이나 좋은 품질의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만들어 내야 한다. 벤처기업이나 대기업이나 모두에게 해당되는 임무이다. 도요타 자동차가 2010년 초에 겪은 대량 리콜 사태도 작은 부품의 품질 문제였다. 1986년 1월에 발생한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참사의 결정적 원인도 O링이라는 부품의 불량 때문이었다. 그런데 벤처기업에서는 품질관리에 신경을 덜 쓰는 것으로 보이며, 그 무신경이 벤처기업의 발목을 잡는 경우를 가끔 보게 된다.

맛집을 찾아 다니다 보면, 주인의 손맛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한 작은 음식점에서, 새 건물을 짓고 확장이사를 하고 나면 음식 맛이 예전만 못하여 실망하는 경우가 있다. 맛집으로 소문이 나서 유명해진 냉면집은 손님이 매일 50명에서 갑자기 매일 500명으로 늘어나서 새로운 건물과 주방이 필요한데, 부부가 음식을 만들고 접대를 하던 기존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운영이 곤란하다.

평양 물냉면의 재료인 메밀도 동네 소매상에서 도매상으로 구매처를 바꿔야 하고, 겨울에 만들어야 제맛을 낼 수 있는 동치미 육수를 하루에 500명분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새로운 장비와 방식이 필요하다. 여름날 점심에 몰려드는 손님을 위해 동치미를 준비하는 것은 마당의 장독대만으로 불가능하다. 더 중요한 변화는 장사에서 가장 중요한 카운터를 챙기느라 바쁜 주인은, 육수와 메밀국수를 포함한 주방의 많은 변화에 따라 발생하는 냉면 맛의 변화를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변해 버린 냉면 맛에 발길을 돌려 버린 50명의 마니아 손님은, 450명의 초보 손님들의 매출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겠지만, 결국은 맛집으로 유명하게 만들어 준 처음의 냉면 맛이 사라져 버린 다음에는, 차차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 아닐지.

실제로 균일한 품질의 상품을 대량생산으로 만들어 내야 하는 대기업에서는 품질관리가 중요하다. 대기업에는 품질관리 부서와 인력이 별도로 운영되고 있지만, 벤처기업에서는 품질관리를 위한 인력도 절차도 마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제조업뿐만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산업에서도 품질관리는 중요하다. 세계적인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에는 소프트웨어 개발인력 대비 품질 테스트 인력 비율이 1 대 1인 반면, 국내의 SW업체들은 10 대 1 수준에도 못 미친다.

벤처기업이 성공한 기업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안정적으로 매출을 발생시키는 단골 고객이 늘어나야 하며, 연구개발을 통한 새로운 기술과 기존 제품의 꾸준한 기능 개선도 중요하지만, 품질 문제로 실망하여 발길을 돌리는 단골손님이 최소화되도록 품질에 대한 자원배분을 늘려가야 한다.

초기의 벤처기업은 창업자이자 발명가 1인이 주도하는 경영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탄탄한 기업으로 성장해 나가기 위해서는 사람에 의존하는 경영에서 점차 조직과 시스템이 기업을 움직이는 품질경영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혁신적 제품이나 디자인은 스티브 잡스와 같은 소수의 뛰어난 인재와 연구·개발(R&D)로 가능하지만, 품질은 최고경영자를 비롯한 전 조직원의 관심과 애정, 지속적 문제의식과 개선이 있어야 비로소 빛을 볼 수 있다. 이같이 품질관리는 조직의 힘을 동원해야 안정화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다행히 동양인들에게 서양인들보다 더 잘 어울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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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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