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신작 - 화차(변영주 감독)

일본소설 마니아라면 누구나 다 아는 미야베 미유키. 미스터리계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그녀의 대표작은 바로 '화차'다. '지옥을 향해 달리는 불수레'를 뜻하는 화차는 한 번 올라탄 사람은 두 번 다시 내릴 수 없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소설은 살아가면서 잘못된 선택으로 비극에 빠진 한 개인을 빗대어, 동시대를 사는 우리의 모습을 투영한다. 또한 현대사회의 이면을 해부하는 신랄함과 깊이 있는 화두로 미스터리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화차'는 이미 국내 독자들을 열광시킨 베스트셀러. 원작의 매력을 단번에 알아본 변영주 감독은 스스로 연출을 자처하며 '미미여사'의 팬에서 그녀의 작품 중 첫 번째 영화화의 기회를 손에 쥔 행운아가 됐다.

일본의 버블경제가 붕괴한 직후인 90년대 초 사회상이 생생히 그려진 소설은 20년이 세월이 지나 한국의 서울을 배경으로 한 영상으로 재 탄생했다. 소설이 그랬듯 영화는 신용 불량과 개인파산, 1인 가구 등 심각한 사회현실을 화면에 녹여냈다.

문호(이선균)와 선영(김민희)은 결혼 한 달 전에 부모님 댁에 내려가던 중 휴게소에 들른다. 그리고 커피를 사러 갔다 온 문호는 선영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선영을 찾기 위해 문호는 그녀의 집에 가보지만 급하게 이사한 흔적이 역력한 집 안엔 지문조차 남아 있지 않다. 문호는 선영을 찾기 위해 전직 강력계 형사인 사촌 형 종근(조성하)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고 그녀의 가족도 친구도 가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강선영으로 살았던 그녀는 실은 강선영이 아니라 차경선이었으며, 정작 진짜 강선영은 증발해버렸다는 것. 양파껍질처럼 한 겹 벗기면 또 다른 진실이 한 겹 드러나는 형국에서 문호는 무엇이 진짜 그녀의 모습인지 점점 혼란스러워하고 종근은 문호의 약혼녀가 단순 실종사건이 아니라 살인사건과 관계되어 있음을 직감하고 수사에 집중한다.

소설 속에서는 사라진 여주인공이 1970-80년대 일본의 거품 경제가 양산한 극단적 소비구조의 인간형으로 묘사된다면, 영화는 선영이 살인을 저지르면서까지 신분을 도용하고 위장하려 했던 것은 그녀의 지옥 같은 삶이 원인이 됐다. 행방불명된 아버지로부터 악독한 사채 빚을 떠안을 수밖에 없었던 그녀는 사창가에 팔려가는 등 최하위 밑바닥 인생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단순히 개인의 잘못 만으로 이렇게 살아가야 되는 것인가.

'발레 교습소' 이후 세 번째 장편영화로 돌아온 변영주 감독은 사건을 바라보는 시점, 인물간의 관계, 캐릭터의 접근성 등 원작이 가진 매력을 영화적으로 정립하기 위해 3년간 20고에 걸친 오랜 각색 작업을 거쳤다. 변영주 감독은 개인파산 같은 사회적인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오늘 우리가 지하철에서 스쳐 지나간 여자들이 없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녀들이 없어진 것조차 모른다"라는 현실에서 오는 공포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며 욕망이 들끓는 현대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정통에 가까운 정공법 연출을 선보인다.

 김효숙 기자 press1218@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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