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포럼- 정해영 (주)피알존 대표이사

얼마 전 `나는 가수다` 시즌 1이 끝났다. 춤과 외모보다 가창력, 실력으로 승부하는 가수만이 진정한 가수로 살아남는 모습을 지켜보며 가수라는 직업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준 프로그램이었다. 필자는 방송 프로그램의 배틀 형식보다 타이틀에 주목했다. 우리가 사회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 `저는, 본인은`이라는 표현으로 애써 겸손함과 객관성을 가지려고 하는데, 이 프로그램은 직업 앞에 `나는`이라는 1인칭을 써서 그 직업을 대표하는 자신감이 가수를 더욱 빛내주고 있음을 느꼈다.

자신의 직업 앞에 당당할 수 있는 자신감은 무엇일까? 최근 사법고시 출신자가 6급 공무원이 되었다. 변호사 업계에서는 변호사의 위상이 땅에 떨어졌다며 술렁였다. 올 한 해 로스쿨 출신을 포함해 2500명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 직급에 관계없이 공무원에 응시하는 변호사들이 계속 나오지 않을까 예측하기도 한다. 회사의 직원들 중에도 잘 적응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겠다고 퇴사하는 사람들이 있다. 공무원이 적성에 맞는 성향도 아니고, 공무원에 대한 남다른 직업의식이 있어 보이지 않는 퇴사자들에게 똑같이 물어본다. `공무원이 왜 좋아요?` 그 물음에 대부분은 정년이 보장된다, 연금이 나온다며 `철밥통`에 대한 인식이 지배적이다. 그렇게 퇴사한 직원들 중 실제 공무원 공채 시험을 통과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공무원 되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2012년도 공무원 9급 공채시험만 해도 2180명 모집에 15만 7000여 명이 지원해 평균 72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고 한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직장을 얻고 난 뒤의 목표로 `정년까지 안정적`인 것이 우리 시대의 청년이 가질 수 있는 직업정신만은 아닐 것이다.

얼마 전 회사로 20대 젊은 청년 십여 명이 찾아왔다. 대학을 이미 졸업하거나 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이라고 했다. 이들은 지역의 명문 국립대학에서 자발적으로 동아리를 만들어 창업을 준비하는 미래 CEO들이었다. 공무원이 되거나 기업체 취업을 위해 도서관에서 두문불출할 시기에 기업을 방문한 이유는 창업에 필요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다양한 사업 아이템으로 사업계획과 펀드준비와 기업운영 노하우를 듣는 십여 명의 미래 CEO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첫째, 살아 있는 생동감이다. 선배 사장의 말에 눈을 반짝이며 필요한 이야기를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는 모습은 마치 출발점에 선 육상선수의 비장함과 같은 하지만 기분 좋은 긴장감이 묻어났다. 둘째, 그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없었다. 최악의 청년 실업시대, 어떤 곳에서 나를 필요로 할까? 고민하는 것은 어쩌면 그들에게는 사치와 같은 것이다. 직장은 구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임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셋째, 그들은 무엇 하나 버릴 수 없는 노후 대비를 하고 있었다. 많은 동년배들이 훗날 기억도 나지 않을 공식과 단어를 외우고 있을 때 이들은 생생한 실제 사례로 살아 있는 교과서들을 만나고 다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취업 준비생들이 수천 대 1의 경쟁자들을 의식할 때 그들의 진정한 경쟁자는 자기 자신임을 알고 있는 듯했다.

기발한 창업자 한 명이 수천 수만 명을 먹여 살리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시대에 살고 있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가 27세에 세계 9위의 부호가 되고,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죽음 이후에도 세상의 패러다임을 바꾼 이로 존경받고 있다. 꼭 해외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대덕에는 벤처신화로 1조 원대 시가총액 창업자, 자산 수백억 원대 젊은 창업자들이 적지 않다.

미래 CEO들을 만난 후 떠나지 않는 우리 사회의 숙제가 있다. 최근 정부의 정책으로 청년창업프로젝트가 실행되면서 눈먼(?) 정부예산을 받기 위해 우선 창업부터 하고 보자는 이들이 생겨나고, 그로 인해 실패하면 신용불량자로 평생을 지내는 경우들이 발생할 수 있다. 기업은 문을 여는 것보다 열었던 문을 닫지 않고 유지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 특히 청년창업은 경험이 부족하고 인맥도 없는 상태에서 열정과 패기만으로 현실과 부딪쳐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청년창업프로젝트의 또 다른 이름은 `나는 창업자다`라는 프로그램이다. `나는 가수다`에서 춤과 외모가 아니라 진정한 가창력으로 승부하듯이 `나는 창업자다`가 되기 위해서는 창업의 절차, 형식이 아니라 기업을 유지하고 성장시켜 나가는 내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창업의 숫자보다 창업 이후의 성장과정과 실패 창업자를 구제하는 사회적 제도를 더욱 탄탄히 만들어 진정한 `나는 창업자`들이 배출될 때 성공한 프로그램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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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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