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일보 로고
최종편집일 : 2017-12-15 23:55

따뜻한 색채·빛으로 ‘삶의 환희’ 표현

2012-03-06기사 편집 2012-03-05 21:19:02

대전일보 > 에듀캣 > 논술

  • 페이스북
  • 구글 플러스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블로그
  • 네이버밴드
  • 폴라로
  • 핀터레스트

[교과서속 미술여행]피에르 르누아르-현광덕 미술교육가·조각가·대전 버드내초 교감

첨부사진1
피에르 르누아르(Pierre Auguste Renoir·1841-1919)는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다. 미술사에서 가장 뛰어난 색채화가, 인물화가로 여체 표현과 풍경화에도 뛰어났다. 그는 리모주에서 석공인 아버지, 재봉사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4살 때 파리로 이사를 했고 13살 때는 도자기에 그림 그리는 일을 하며 틈틈이 데생 연습을 했다. 실력을 인정받아 어려운 그림을 그리다가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해고되어 손부채, 깃발에 그림을 그리며 생계를 유지했다. 가정 형편상 20살에 미술학교에 들어가 글레르에게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다. 그러나 도구구입, 모델비, 식비가 없어 친구 집에 얹혀살며 모델료가 들지 않는 자연을 그리게 된다. 인상파와 인연을 맺었지만 빛이 쏟아지는 자연 속에서 자연만을 그리지는 않았다. 1870년대 중반 화상 뒤랑 루엘을 만나면서 재정적인 어려움에서 약간 벗어난다. 당시 화가의 등용문은 살롱에서 작품을 인정받는 것이다. 그는 두 차례 살롱의 심사를 통과하며 엄청난 찬사, 부와 명성을 얻는다. 자신만의 화실을 파리에 갖고 작품활동에 열중한다. 1890년대 그림여행을 통해 라파엘과 앵그르의 작품들을 연구하면서 고전주의에 가까운 작품을 그린다. 66살에 조각가 마이욜의 영향으로 최후 10년간 조수와 조각을 만들었다. 사망할 때까지 그는 칸에 살았으며 80살이 넘도록 작품활동을 했다.

세잔은 풍경 속에 자연의 정신을 품고 르누아르는 여인을 그려 그 미에 끌리게 한다. 누드의 천재라고 할 수 있는 루벤스는 살을 그렸으나 르누아르는 살갗을 그렸다. 그는 풍경화를 보면 그 속에서 거닐고 싶고, 누드화를 보면 모델을 안고 싶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60여 년 동안 약 6000여 점의 그림을 남겼다. 말년에는 관절염으로 거동이 힘들고 손이 변형되어 손에 붓을 묶고 그렸다. 슬픈 그림을 그린 적이 없는 유일한 화가라 불릴 만큼 그의 그림은 밝고 아름다운 그림들뿐이며, 따뜻한 색을 즐겨 사용하여 보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느낌을 준다. 무척 가난했지만 희망을 그렸고, 아름다운 빛을 묘사한 그의 그림은 삶의 환희와 기쁨이 묻어나는 빛과 색채의 예술임에 틀림없다.

피아노 앞의 아가씨들(Two Girls at the Piano·oil on canvas·116×81cm·1892)의 주제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지만 그것을 부드럽고 다양한 색조로 표현했다. 즉 색의 대비를 자주 표현했다. 두 소녀의 옷 색깔, 머리 결 색깔 등이 잘 대비된다. 이 그림의 전체적인 색조는 빨강과 노랑이다. 따뜻한 색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 전체의 분위기를 포근하고 풍부하게 만든다. 녹색 커튼을 드리워서 빨강이 더욱 살아나게 보색효과까지 더하고 있다. 이 그림은 구도상 매우 철저히 계산된 완벽한 균형미를 보여준다. 피아노 치는 소녀의 상체가 화면 좌우를 황금비율로 분할하는 수직선을 이루고 소녀의 두 팔은 수평선이며 왼쪽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흐르는 반대방향의 대각선은 커튼과 피아노가 맡고 있다. 빨강, 파랑, 노랑, 초록 등의 원색을 기조로 하고, 이것을 대비하면서 융합적인 색감으로 감싸고 있다. 그는 대상물 하나하나를 선명한 빛깔로 마무리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엄격한 습작 후 가능한 모양과 색깔의 어우러진 울림이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첨부사진2현광덕 미술교육가·조각가·대전 버드내초 교감

강은선기자의 다른기사보기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