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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애 추구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2012-02-28기사 편집 2012-02-27 21:5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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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여행]파가니니-이상철 순수예술기획 대표

파가니니 (Niccolo Paganini·이탈리아의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1782-1840)에게 진정한 사랑이 있었을까? 우리, 그리고 수 많은 음악가들은 극적인 사랑에 빠지고 마음 아파하며 후회하기도 한다. 하지만 파가니니는 순수한 감성의 시대인 낭만주의 시대에 살면서 연애는 하되 결혼은 하지않는 나쁜남자였다. 결혼을 하지않는 연애주의자로서의 나쁜남자는 아니다. 그는 일생에 있어서 항상 결혼의 기회를 피했으며 진지한 마음이 아닌 즐거움의 대상으로 여자를 만나왔다.

일찍이 어린나이부터 이미 초인적인 기교로서 바이올린 연주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파가니니였지만, 그리 잘생긴 외모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료되어 그의 연주를 한번 보면 누구나 반할 수 밖에 없었다. 파가니니처럼 나쁜남자의 기질을 가지고 있었던 리스트(헝가리의 피아니스트·작곡가·1811-1886)는 정열적인 사랑으로 지속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을 하기도 했지만 파가니니는 만남과 이별에 있어서 후회도 미련도 없는 차가운 마음의 나쁜남자였다. 여성 입장 역시 그에게 어떤 여성도 지속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을 베풀었다는 기록은 없다.

19살이 되던 1801년, 파가니니는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 공식적으로 어떤 장소에 일체 모습을 드러냈다는 기록이 없다. 다만 그의 일기에 1805년까지 농원 일을 도우며 취미로 기타를 쳤다고 써있을 뿐이다. 그는 마리나라는 젊은 미망인의 농원에 머물렀다. 기타 연주를 좋아하던 그녀를 위해 기타와 함께하는 실내악 작품을 다소 작곡하게 된다. 이에 따라 파가니니는 다른 작곡가와 다른 독창적인 작품들의 특징을 가진다. 바로 기타와 바이올린의 조화로 만들어진 작품들이 적지않게 쓰여졌다는 것이다.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12개의 소나타'는 이 시기에 작곡되었다.

이후 젊은 미망인 마리나와 이별하고 1805년 나폴레옹이 지배하는 루카에서 3년 계약으로 궁정 독주 주자로서 초빙된다. 그 곳에서 파가니니는 나폴레옹의 친여동생 엘리자와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파가니니에게 관심을 갖고 그를 근위기병대 대장으로까지 임명한다. 엘리자는 파가니니의 연주를 들을 때마다 실신할 정도로 감동했으며 파가니니 주위에 몰리는 많은 여성들을 질투하였다. 이러한 질투는 1807년 8월 15일 나폴레옹의 생일 맞이하여 엘리자는 기념으로 G선만으로 연주할 수 있는 곡을 만들라고 명령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나폴레옹 소나타'라는 타이틀로 한껏 기교를 부리는 작품으로 그의 명성을 더욱 높이는 데 성공한다. 계약기간이 끝나고 파가니니는 루카를 떠난다.

파가니니는 40세가 되던 1822년, 일생 중 가장 진지한 사랑을 하게 된다. 베네치아에서 알게 된 안토니아 비안키는 극장의 합창단원으로 신분도 높지않고 음악적 재능도 뛰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파가니니는 그녀를 가르치면서 자연스럽게 연인관계가 되고 함께 살게 된다. 1825년, 파가니니는 43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비안키와의 만남을 통하여 아킬레스라는 이름의 아들이 태어나게 된다. 아들이 태어난 뒤, 비안키의 밝고 순종적인 성격이 낭비벽과 허영심으로 바뀌었다고 느낀 파가니니는 결국 결혼을 망설이게 되고 1828년 빈에서 헤어진다. 하지만 사랑은 떠났지만 아들에 대한 양육권을 포기할 수 없는 그였다. 파가니니는 아들 아킬레스의 양육권을 얻기 위해 비안키가 요구하던 양육비를 지불하고 비로소 양육권을 얻게 된다. 비안키는 이탈리아로 돌아가 2년 뒤 브루나티란 사람과 결혼한다. 그리고 역시 두 사람은 이후 다시는 만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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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2이상철 순수예술기획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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